미국 백악관이 11월 13일 한미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SSN) 건조를 공식 승인하고, 민간용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질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후 70여 년간 이어진 한미 동맹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백악관 팩트시트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공격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The United States has given approval for the ROK to build nuclear-powered attack submarines)"고 명시했다. 이어 "미국은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간 핵연료 주기에 대해서는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123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수십 년간 한국의 핵 주권을 제약해 온 123 협정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안보 협력의 대가로 한국은 총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 분야에,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인공지능, 에너지, 제약, 핵심광물 등 전략 산업에 투자된다. 한국은 또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로 조속히 증액하고,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하며, 주한미군을 위한 330억 달러 규모의 포괄적 지원 계획을 공유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자동차, 자동차 부품, 목재 등에 부과하던 상호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백악관 팩트시트 발표 후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밝혔으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기존 협정의 조정이 필요하고 앞으로 후속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이행까지는 여러 난제가 남아 있다. 팩트시트에는 SSN의 건조 장소가 명시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 소유)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한 반면, 이재명 대통령과 위성락 실장, 안규백 국방장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국내 건조를 전제로 논의했다"며 미국 건조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핵연료 유형도 중요한 쟁점이다. 미 해군과 호주(AUKUS)가 채택한 고농축 우라늄(HEU, 농축도 90% 이상) 방식은 잠수함 수명 동안 연료 교체가 필요 없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 프랑스와 중국이 사용하는 저농축 우라늄(LEU, 농축도 20% 미만) 방식은 비확산성이 높지만 약 10년 주기로 연료 교체가 필요하다. 한국은 민간 농축 절차 지지와 연계된 점을 볼 때 프랑스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북아 지역의 연쇄 반응도 시작됐다. 일본 고이즈미 신지로(Shinjiro Koizumi) 방위상은 11월 6일 TV 출연에서 "주변국 모두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됐다"며 "일본도 디젤을 계속 쓸지, 원자력으로 갈지 논의해야 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11월 12일에는 참의원에서 "한국과 호주가 보유하게 되는 환경"을 거론하며 차세대 동력원에 대한 논의가 "당연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주의를 표명"하며 한미 양국이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말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팩트시트 발표 직전인 11월 8일 노광철 국방상을 통해 한미안보협의회(SCM)를 비난하며 한미의 "적대적 본성"에 "공세적인 행동"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내 반응은 엇갈렸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담한 승부수"가 이뤄낸 "외교 협상의 모범"이라며 극찬한 반면, 국민의힘은 핵잠수함 도입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과도한 경제적 비용이 연계된 점을 지적했다. 일부 진보 성향 시민단체는 이를 "현대판 경제 약탈"이자 "굴종 외교"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한국을 단순한 "안보 소비자"에서 벗어나 미국의 핵심 산업 기반을 지원하고 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전략적-산업적 기여자"로 격상시켰다고 평가한다. 이는 미국의 산업 기반에 부담을 주는 "기술 수혜자" 모델인 호주(AUKUS)의 사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실무 협상은 향후 조선 작업반(shipbuilding working group)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123 협정 개정은 미 행정부 서명 후 의회에 제출돼 90일간의 연속 회기 동안 검토를 받아야 하며, 이 기간 동안 의회가 공동 결의안으로 반대하면 협정은 무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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