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권력남용조사위원회(CIAA)가 8일(현지시간) 중국 자금으로 건설된 포카라 국제공항(Pokhara International Airport) 프로젝트와 관련해 전직 장관 5명을 포함한 55명을 특수법원에 기소했다. 83억6천만 네팔 루피(약 6천280만 달러, 한화 약 870억~1천억원) 규모의 비용 부풀리기 혐의로, 네팔 항공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패 소송이다.
기소된 전직 장관은 람 샤란 마하트(Ram Sharan Mahat) 전 재무장관, 빔 프라사드 아차랴(Bhim Prasad Acharya) 전 관광장관, 포스트 바하두르 보가티(Post Bahadur Bogati·사망), 디팍 찬드라 아마티아(Deepak Chandra Amatya), 람 쿠마르 슈레스타(Ram Kumar Shrestha) 등이다. 중국 국영기업인 차이나 CAMC 엔지니어링(China CAMC Engineering Co.)과 그 회장 왕보(Wang Bo), 지역 총괄 매니저 류성청(Liu Shengcheng)도 피고인에 포함됐다. 기소장은 피고인들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공모하여" 공항 건설 비용을 인위적으로 부풀렸다고 명시했다.
CIAA 조사에 따르면 당초 승인된 사업비는 1억4천500만 달러였으나, 피고인들은 이를 조직적으로 조작해 최종적으로 2억1천6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CAMC 측은 조달 절차에 들어가기 전부터 공공기관 공무원들에게 서신을 보내 비정상적인 가격을 설정하고 비용 견적을 2억8천650만 달러로 늘리려는 의도를 보였다.
네팔 하원 공공계정위원회(PAC) 산하 소위원회 조사 결과, 활주로와 유도로 매립에 적합한 흙과 자갈을 운반하는 비용으로 550만 달러를 지급받았으나 실제로는 인근의 질 낮은 흙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활주로와 에이프런의 배수 시설 공사비로 1천64만 달러, 토양 다짐 작업비로 443만 달러를 수령했으나 해당 공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특히 계약서상 CAMC가 부담해야 할 22억 네팔 루피(약 1천600만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네팔 관료들이 면제해주는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사 감리를 맡은 차이나 IPPR 인터내셔널 엔지니어링(China IPPR International Engineering)은 본래 CAMC의 자매회사였으나 2019년 CAMC가 IPPR을 인수하면서 자회사가 돼, 시공사가 자신을 감독하는 회사를 소유하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됐다. IPPR 직원들은 "CAMC의 작업을 너무 면밀히 조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기소에는 네팔회의당(NC) 소속 람 샤란 마하트 전 장관과 공산당 통일마르크스레닌주의(CPN-UML) 소속 빔 프라사드 아차랴 전 장관, 마오이스트 센터 소속 포스트 바하두르 보가티 전 장관 등 주요 정당 출신이 모두 포함돼 이념을 초월한 부패 카르텔의 실체를 드러냈다. 아차랴 전 장관은 현재 UML 부위원장으로, 2014년 4월 7일 네팔 민간항공국(CAAN) 이사회 의장으로서 비용이 부풀려진 계약 평가 보고서를 승인하고 같은 날 CAMC의 입찰을 최종 확정 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위 관료로는 현직 CAAN 국장(직무 정지) 프라딥 아디카리(Pradeep Adhikari)가 포함됐다. 그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포카라 공항 프로젝트 책임자로 재직하며 현장 감독과 기성금 지급을 총괄했다. 전직 CAAN 국장 트리 라트나 마하르잔(Tri Ratna Maharjan)과 라티시 찬드라 랄 수만(Ratish Chandra Lal Suman), 전직 차관급 인사 수실 기미레(Sushil Ghimire)와 수만 샤르마(Suman Sharma) 등 10명의 전직 차관(Secretary)도 기소됐다.
국립 트리부반 대학(Tribhuvan University) 공과대학 라빈드라 나스 슈레스타(Rabindra Nath Shrestha) 교수 등 3명도 기소 대상에 포함됐다. 이들은 프로젝트 비용 증액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근거 없는 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기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필요한 문서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보고서를 작성하여 비용을 2억3천만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포카라 공항은 2023년 1월 개항했으나 현재까지 국제선 정기편이 전무한 상태다. 활주로 높이가 설계보다 낮게 시공됐음에도 적절한 보강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포카라의 지형적 특성과 활주로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에어버스 A320이나 보잉 737 같은 중형 여객기가 만석으로 이륙할 수 없는 페이로드 제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연료 저장 시설이 완공된 것으로 서류상 처리되었으나 실제로는 건설되지 않아 항공기에 급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인도가 자국 공군 기지와 인접한 해당 공역의 보안 문제를 이유로 포카라 공항 및 가우탐 부다 공항(Gautam Buddha Airport)으로 향하는 국제선 항공기의 진입을 불허하고 있다. 네팔 서부에 위치한 포카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인도 영공을 통과하여 마헨드라나가르(Mahendranagar) 등 서부 진입로를 이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나, 인도의 영공 통과 거부로 이 노선이 사실상 봉쇄됐다.
네팔 정부는 공항 건설 자금 2억1천596만 달러 전액을 중국 수출입은행(China Exim Bank)에서 차관으로 조달했다. 총액의 25%는 무이자 차관이고 나머지 75%는 연 2% 금리가 적용되며, 20년 상환에 7년 거치 조건이다. 2026년부터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데, 네팔 정부는 이자 비용으로만 연간 약 8억4천만 루피(약 630만 달러)를 중국에 지급해야 한다. 2014년 타당성 조사에서는 2025년까지 연간 28만 명의 국제선 승객을 유치하여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했으나 완전히 빗나갔다.
위기감을 느낀 네팔 정부는 8월 비슈누 파우델(Bishnu Paudel) 재무장관과 푸슈파 카말 다할(Prachanda) 총리가 잇달아 중국 측에 차관을 무상원조(Grant)로 전환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으나, 중국은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기소는 9월 네팔을 뒤흔든 청년 주도 반정부 시위 직후 이루어졌다. 당시 소셜 미디어 금지 조치에 반발하여 시작된 시위는 부패와 경제난에 대한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으로 확산됐다. 분노한 시위대가 카트만두의 의회 건물에 난입하여 불을 지르고, 경찰 발포로 22명 이상이 사망하며 수백 명이 부상당하는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로 K.P. 샤르마 올리(K.P. Sharma Oli) 총리가 사임하고 정국은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중국 정부는 포카라 공항을 "히말라야를 넘는 우정의 상징"이자 일대일로(BRI) 사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선전해왔다. 2023년 1월 개항식에서 천송(Chen Song) 주네팔 중국 대사는 이 공항이 "중국 엔지니어링의 품질을 구현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대규모 부패 혐의와 중국 국영기업 기소에 대해 중국 대사관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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