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국화향기 따라 소천하신 김남조 시인

조정애 칼럼니스트 승인 2023.10.12 12:49 의견 0

고 김남조 시인

한국시인협회와 한국여성문학인회를 통한 행사며 선생님이 남기신 1000편이 넘는 시보다 먼저 아련히 떠오르는 김남조 선생님의 추억을 적어본다.

2009년 7월 25일, 한국시인협회에서 주관한 국보시낭송회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그 행사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날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때 김남조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고 뒤에 오는 문효치, 이길원 시인을 비롯한 몇 분을 일러 선생님을 따라오라고 하셨다. 아직 날은 어두워 지지 않았고 어디 커피점이라도 보이면 들어갈 기색이었다. 모두 흩어져 돌아가던 차에 김남조 선생님을 따라가는 일행이 한 열 명 가량 되었다.

문효치 시인과 이길원 시인이 선생님을 부축해 주었고 오양호 평론가, 유안진, 유자효, 노향림, 한분순, 김현숙 시인, 대구 정숙 시인 그리고 필자인 조정애 시인이 따라갔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큰 ‘거울못’ 레스토랑이 눈에 띄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일행이 자리에 앉아도 워낙 넓은 곳이라 이야기를 나누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김남조 선생님이 오늘은 내가 낼 터이니 부담 갖지 말고 식사와 술을 시키라고 하셨다.

항상 후배 시인들을 배려해주시고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주시는 원로 선생님이 함께한 자리라 시인들이 아주 행복했다.

삼성출판사 사장님이 지나가시며 “오늘은 본인이 쏜다”고 하여 즐거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생맥주가 한 잔씩 돌고 술이 오르자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떠들어댔지만 식당이 워낙 넓어서 우리 좌석의 이야기나 웃음소리가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 김남조 선생님이 일어나 한 말씀 하셨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시인들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바랍니다. 심사는 제가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4곡은 꼭 불러야 합니다.” 처음엔 노래방도 아닌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남조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꼼짝없이 한 사람씩 그야말로 그동안 아꼈던 비장의 노래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길원 시인이 ‘아도르’를 원어로 부르자 분위기는 완전히 무르익어갔다. 노향림 시인이 ‘한계령’ 김현숙 시인이 ‘민들레 홀씨’ 문효치 시인이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유안진 시인이 ‘댄서의 순정’ 한분순 시조시인이 ‘소양강 처녀’ 오양호 평론가가 ‘숨어 우는 바람소리’ 사진을 찍느라 바삐 움직이던 조정애 시인(필자)이 조병화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 ‘사랑은’(페티김)을 불렀다. 유자효와 정숙 시인도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이렇게 김남조 선생님 앞에서 무반주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근처에 노래방이 없어서 용산으로 나가기는 번거로웠고 이렇게 시작된 노래자랑이 넓은 레스토랑 덕분에 다른 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 진행이 되었다. 김남조 선생님의 노래는 끝내 듣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지시대로 한 사람이 4곡씩 부르고 나서 김남조 선생님이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1등 이길원 2등 문효치 3등 조정애

아아, 내가 3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시인들이 시 못지않게 노래도 참으로 잘 부르십니다.” 김남조 선생님이 심사평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이길원 시인이 (국제펜한국본부 이사장) “제2회 시인들의 노래자랑으로 오는 9월 중순에(17일) 국제펜한국본부 국제세미나가 끝나면 그때 제가 다시 모이도록 연락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모두 아쉬움을 남기고 밤 9시에 헤어졌다.

선생님의 부고를 받고 나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hyesol57)를 열어 함께하셨던 그때 추억을 떠올리면서 사진을 찾아냈다.

선생님을 모시고 제2회 시인들의 노래자랑 모임이 열리기를 은근히 기다려왔는데 무심한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지난날 1994년 PC통신 ‘시와 사람들’을 하이텔에 개설하면서 김남조 선생님 댁으로 자주 찾아갔을 때 얘기를 나누던 그 넓은 서재와 남편 김세중(1928-86)선생의 조각 작품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세종문화회관 사랑방 시낭송회를 50회 주관할 때나, 2000년 유네스코 시의 날 기념 문화일보시낭송회(9회) 때도 선생님은 자문을 아끼지 않으셨다. 77년을 시와 더불어 살아오시면서 눈부신 문학적 성취와 화려한 경력을 이루셨지만 늘 외로우셨던 선생님은 자신의 그림자 같은 고독을 만나서 이야기하시기를 좋아하셨다. 언제나 만나면 손잡아 주신 그 따뜻한 온기가 내 몸에 남아서 시와 더불어 오래오래 선생님을 그리워 할 것이다.

- 삶은 광막하며 사랑은 절실하며 문학은 준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의 명제를 섬기며 함께 따뜻하게 걸어갑니다. 2016. 12. 7. 김남조 <문학의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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