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시의 날을 맞아 오후 3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순신장군 동상 옆 특별무대에서 야외 시낭송 및 공연이 열렸다.
한국시인협회(회장 유자효)와 현대시인협회(회장 양왕용)가 주관하는 <광화문에서 시를 노래하다>라는 테마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이근배, 김종해, 오세영, 신달자, 나태주, 문정희, 최금녀, 장석남, 문태준, 조온윤, 이혜선 김철교 시인이 시를 낭송했고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 손숙, 김성녀가 한국의 명시들을 낭송했다.
'詩의 날' 선언문
詩는 삶과 꿈을 가꾸는 言語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우리 겨레가 밝고 깨끗한 삶을
끊임없이 일구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이에 詩의 無限한 뜻과
그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하여
新詩 80年을 맞는 해,
六堂 崔南善의「海에게서 少年에게」가
1908년『少年』誌에 처음 발표된 날,
십일월 초하루를 '詩의 날'로 정한다.
‘시의 날’ 제정은 18세의 최남선 시인이 1908년 ‘소년’을 창간, 이때 발표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가 현대 시의 시작으로 기록돼 있다.
시의 날’이 만들어진 배경은 1987년 한국현대시인협회 권일송 부회장이 제안하고 김수남(소년한국 사장), 김성우(한국일보 국장)의 발의로 한국시인협회 김춘수 회장의 동의(동참)을 얻어 제정됐다.
<그리운 시인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문화사랑방에서 원로 시인을 모시고 매월 시낭송회를 (50회)주관했던 그 때가 그립다.
1994년 가을은 세종문화회관은 넓은 계단 위의 광장에서나 뒤편의 분수대에서 시화전과 야외 시낭송회를 자주 열었다.
건물 가운데를 지나 세종문화회관 분수대로 가는 넓은 통로에 마침 '문화 사랑방'이라는 넓은 카페를 오픈 한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 관장으로부터 매월 시낭송회를 문화사랑방에서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pc통신 하이텔 ‘시와 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던 나는 9명을 모아 창립 모임을 가졌다.
1994년 11월 8일부터 매월 50명이상 참석, 연말에는 백명가까이 모여 불빛도 좋은 무대에서 참가자 전원이 빠짐없이 시를 낭송 했다. 근처 조씨네 지하 식당에 가서 뒷풀이로 노래도 하고 술과 식사를 하면서 원로 시인들과 문학의 이야기에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매월 둘째 토요일 저녁이면 서울의 중심에서 시인들이 시를 낭송하는 시의 향기를 꽃 피우는 광화문 문화 사랑방의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랑방낭송문학회'를 정식으로 서울시에 등록하기도 하고 문단을 초월하여 많은 시인을 초청하기도 하며 제 50회가 될 때까지 열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방시낭송회를 주관 했다. 뒤돌아보면 많은 시인들이 다녀갔고 또 뜻깊은 일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갑게 맞이하던 수많은 시인들도 또 원로 시인들도 이 세상을 떠나고 없다.
오직 시인을 위한 사랑방시낭송회는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노래했다. 농아인을 위한 수화시 낭송도 있었다.
‘시낭송가’라는 호칭이 없던 당시 명예시인의 칭호를 받은 소년한국일보 김수남 사장이 제1회 시낭송가였다. 그분은 국경일 행사마다 세상을 향해 목이 터져라 시를 낭송했다.
어려운 시인을 돕고 장애를 가진 농아인을 도우며 시를 사랑했던 그분도 세상에 없다.
2000년 3월부터 9회에 걸쳐 매월 문화일보 시낭송회를 주관 하게 되었을 때 즈음 세종문화회관 문화사랑방 자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바라건데 시의 날 선언문처럼 이 나라 이 지구를 향해 노래하는 자리에는 참된 시정신으로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하는 슬기가 우리겨레의 밝고 깨끗한 삶으로 이어져 가길 기원한다.
-광화문 쉼터에서
저작권자 ⓒ 외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