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 향년 88세로 소천하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역임

조정애 칼럼니스트 승인 2024.05.22 17:17 | 최종 수정 2024.05.22 17:21 의견 0

신경림(申庚林, 88세 본명 신응식(申應植)) 시인이 22일 오전 8시 17분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으로 소천했다.

신경림 시인은 그동안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다고 알려졌다.

신경림 시인 (사진=나무위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한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 노은면에서 출생했다.

1955년 동국대 영문과를 입학했고,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농무', '새재', '새벽을 기다리며', '달넘세', ‘씻김굿', '우리들의 북', '가난한 사랑노래', '남한강', '쓰러진 자의 꿈', '우리들의 복', '저 푸른 자유의 하늘', '갈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목계장터', '뿔', '낙타‘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4·19문화상, 호암상(예술 부문) 등을 수상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등을 역임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장지는 충주 노은면 연하리 선영이며 발인은 오는 25일 5시30분이다.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목계장터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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