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21일 일본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되며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그러나 그의 출범은 분열된 당내 선거와 연이은 정치적 재편의 산물로,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정권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2단계 총재 선거 끝에 승리
이번 총재 선거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사임에 따라 치러졌다. 이시바 내각은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양원에서 모두 과반 의석을 상실했고, 이 정치적 위기가 리더십 교체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4일 실시된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 총재 선거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등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선거는 국회의원이 투표하는 의원표와 당원들이 투표하는 당원표를 동등한 비중으로 합산하는 2단계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후보는 총 183표를 얻어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는 당원표에서 119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덕분이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64표를 얻는 데 그쳐 고이즈미(80표)와 하야시(72표)에 이은 3위에 머물렀다. 이는 자민당 의원단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성향의 고이즈미나 하야시를 선호했지만, 이념적 성향이 강한 풀뿌리 당원들은 강경 보수 노선의 다카이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음을 보여준다.
결선 투표는 국회의원과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연합회 대표의 투표로 이뤄졌으며, 다카이치 후보는 185표를 획득해 156표를 얻은 고이즈미 후보를 누르고 신임 총재로 선출됐다. 이러한 승리의 배경에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전 총리와 같은 당내 실력자들의 막후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공명당 이탈과 유신회 연대
다카이치 총재 선출 며칠 후, 26년간 자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던 온건 성향의 불교계 정당 공명당(公明党)이 연립정권 이탈을 선언했다. 공명당은 다카이치 총재의 초강경 보수 노선과 자민당의 부패 추문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을 이탈의 이유로 들었다.
공명당의 24석 없이는 자민당 단독으로 중의원 과반인 233석 확보가 불가능해졌다. 자민당이 보유한 196석만으로는 국회 지명 선거에서 총리 선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20일, 자민당은 우익 성향의 야당인 일본유신회(日本維新の会)와 연립정권 수립에 공식 합의했다. 이 연대를 통해 다카이치 총재는 21일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자민당 196석과 유신회 35석을 합쳐도 총 231석으로, 과반에 2석이 부족하다. 이는 다카이치 내각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군소 정당과 협상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베 노선 계승자
다카이치 총리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이자 자민당 내 최강경 보수파의 기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2021년, 2024년, 2025년 세 차례에 걸쳐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했으며, 세 번째 시도 만에 성공했다. 그의 지지 기반은 구(舊) 아베파와 보수 성향의 풀뿌리 당원들에 집중돼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전 총리를 정치적 롤모델로 공공연히 언급하며, 강경 보수 노선으로 인해 종종 대처에 비유된다. 총재 당선 후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라는 말을 버리겠다"거나, 동료 의원들을 향해 "마차를 끄는 말처럼 일하게 하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다수의 자민당 엘리트와 달리, 다카이치는 정치 명문가 출신이 아니며 평범한 직장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대학 시절 헤비메탈 밴드 드러머로 활동했고, 정계 입문 전에는 방송국 앵커로 일하는 등 일본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사나에노믹스와 강경 외교
'사나에노믹스(Sanaenomics)'로 불리는 다카이치의 경제 정책은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직접적인 계승으로, 공격적인 재정 부양과 지속적인 금융 완화를 핵심으로 한다. 그의 슬로건은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日本列島を、強く豊かに)"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난 대비, 공급망 강화 등 위기관리 분야와 첨단 기술 등 성장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주창한다. 결정적으로, 안정적인 2% 물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재정 건전성의 핵심 지표인 기초재정수지 흑자화 목표를 일시적으로 동결하여 전략적 지출을 우선하겠다고 공약했다.
외교 및 국가 안보 측면에서는 평화헌법, 특히 제9조를 개정하여 자위대를 '국방군(国防軍)'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방 예산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증액하고, 미사일 방어, 인공지능(AI) 무기, 우주 및 사이버전 등 첨단 역량에 투자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
다카이치는 대중국 강경파(China hawk)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투자 심사 강화, 간첩 방지법 제정 등의 정책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대만에 대한 그의 지지 발언은 중국이 중대한 도발로 간주하는 사안이다.
그는 갑급(A級)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를 참배해 온 오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공식 사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국제 사회 반응 엇갈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재에게 "위대한 지혜와 힘"을 칭송하며 따뜻한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미일 동맹을 재확인했다. 미국은 그를 중국 견제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그의 당선을 '내정'이라 칭하며 신중한 논평을 냈지만, 대만과 역사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기존의 정치적 합의를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관영 매체들은 다카이치를 '여자 아베', '우익의 대표'로 규정하며, 일본 정치의 위험한 우경화를 경고하고 그의 강경한 국방 정책과 대만 관련 입장에 우려를 표명했다.
다카이치의 당선은 한국에 '적신호'를 켰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은 최근 개선되던 양국 관계에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한국 정부는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외교적 성명을 발표했지만, 언론과 정치 분석가들은 과거와 같은 냉각기로의 회귀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
대만은 그의 당선을 열렬히 환영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과 집권 민진당(民進党)은 그를 '확고한 친구'라 칭하며 안보 및 무역 분야에서의 협력 심화를 기대했다.
불안정한 권력 기반
다카이치 총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그의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의제와 그가 물려받은 취약한 정치적 기반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이다. 자민당-유신회 연합은 중의원 과반 의석에 2석이 부족하다. 이는 예산안이나 안보 관련 법안과 같이 논쟁적인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다카이치 총리가 다른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자민당과 유신회의 연대는 새롭고 검증되지 않은 '정략결혼'이다. 안보 문제에서는 이념적으로 유사하지만 다른 사안에서는 충돌할 수 있다. 특히 유신회는 재정 규율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다카이치의 대규모 재정 지출 계획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의 강경한 발언과 정책은 분열을 초래한다.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무시하는 발언은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며 반발을 샀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단체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현상은 그의 지지 기반이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그는 부부 별성 제도 도입이나 여성의 왕위 계승 허용과 같이 양성평등을 위한 핵심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원칙을 강력히 지지한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그의 리더십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과반의 동료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당내 온건파가 그의 의제에 저항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 분석가들은 단명 정권이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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