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 전 검찰총장/MBC 뉴스 영상 캡춰


편집자 주 : 심우정 전 검찰총장 딸의 특혜채용 의혹이 공수처 수사로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외교부 내 정실주의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15년 전 유명환 전 장관 사건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9월 24일 새벽 공수처의 압수수색이 시작되면서, 심우정 전 검찰총장 딸의 특혜채용 의혹은 더 이상 정치적 공방의 영역을 벗어나 사법부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법적 처벌의 문제를 넘어선다. 과연 대한민국 외교의 최고 엘리트 집단인 외교부는 언제까지 '아빠 찬스'라는 유령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데자뷰, 그리고 절망

심민경 씨를 둘러싼 의혹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돋는다. 15년 전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스캔들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과거의 각본을 그대로 베껴 쓴 듯한 착각이 든다.

2010년 유 장관의 딸은 유효기간이 만료된 영어 성적으로 1차에서 탈락 요건에 해당했지만, '적격자 없음' 처리 후 재공고를 통해 합격의 기회를 얻었다. 2025년 심 전 총장의 딸은 석사학위 미소지 상태로 지원했지만, '예정자'도 인정한다는 예외 적용으로 첫 관문을 통과했다.

유 장관 딸의 경우 면접위원 중 2명이 장관의 직속 부하였고, 심 전 총장 딸의 경우에는 외교 전문성과 거리가 먼 대통령 경호처 인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두 사건 모두 서류 전형 결과가 면접에서 극적으로 뒤바뀌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2010년 사건을 "법령을 위반한 맞춤형 채용"이라고 결론지었고, 고용노동부는 2025년 사건을 "채용절차법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1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외교부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이는 조직적 학습 능력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한다.

숫자가 말하는 진실

외교부의 정실주의 문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외무고시 2부 시험'을 통해 선발된 22명 중 41%인 9명이 고위 공직자의 자녀였다는 통계가 이를 웅변한다. 외교관 자녀 25명 중 56%가 핵심 부서인 북미국 근무 경력을 가진 반면, 일반 외교관은 11.9%만이 그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이런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외교부 내에는 보이지 않는 '특권층'이 존재하며, 이들의 자녀에게는 일반인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아빠 찬스'는 단순히 입직의 문을 열어주는 것을 넘어, 경력 전반에 걸쳐 최고의 기회를 우선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심우정 사건의 특별함

그렇다면 이번 심우정 사건이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첫째, 공수처라는 독립적인 수사기관이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혐의로 강제수사에 나섰다는 점이다. 과거 유명환 사건이 정치적 파장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둘째, 심 씨의 경력 부풀리기 수법이 더욱 정교해졌다는 점이다. 8개월의 실무 경력을 35개월로 늘리기 위해 학부 시절 인턴십과 대학원 연구보조원 경험까지 '실무 경력'으로 포장한 것은 기존 사례보다 한층 대담한 시도였다.

셋째, 외교부가 채용 분야를 '경제학'에서 '국제정치'로 바꾼 것은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둔 '맞춤형 공고'라는 의혹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마치 배우를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것 같은 이 과정은 공공기관 채용의 사유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시스템의 한계, 문화의 고착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근본에는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자리하고 있다. '채용절차법'이 공무원 채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허점, 국가기관의 위법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의 부재, 특별채용 과정의 불투명성 등이 그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문화의 문제다. 2010년과 2025년 두 차례의 스캔들에서 외교부가 보여준 초기 대응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됐다.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절차는 공정하고 투명했다"고 강변하다가, 외부 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마지못해 유감을 표명하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는 조직의 과오를 인정하고 개선하기보다는 우선 조직과 구성원을 보호하려는 뿌리 깊은 관성을 보여준다.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조직을 방어하려는 폐쇄적인 '이너서클' 문화 속에서, 동료의 자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부패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배려'로 인식될 수 있다.

이제 끝내야 할 때

감사원은 2021년 외교부 본부 고위 공무원의 39%가 무보직 대기 상태라고 지적했다. 법령상 근거 없이 고위 외무공무원을 장기간 '무보직' 상태로 두는 관행도 반복적으로 지적받았다. 이처럼 원칙이 무시되고 투명성이 결여된 인사 관리 관행은 정실주의가 개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채용절차법 위반 사례 수백 건 중 형사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현실도 개탄스럽다. 정부가 민간 부문에 강요하는 공정성의 잣대를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못하는 위선적 모습이다.

이번 심우정 사건은 외교부에게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른다. 15년 전의 쓰라린 교훈을 또다시 무시한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외교부를 믿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얼굴인 외교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외교력 약화로 이어진다.

새로운 신뢰의 규약을 향하여

이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공수처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를 한 점 의혹 없이 신속하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범죄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 '불처벌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국회는 '채용절차법'을 시급히 개정하여 공무원 채용에 대한 예외 조항을 삭제하고, 법을 위반한 국가기관에 대해 실효성 있는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민간에 적용되는 공정성의 잣대가 공공 부문에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도록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

외교부는 모든 특별채용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모든 특채 과정에 독립적인 외부 기관의 감독을 의무화하고, '실무 경력' 산정과 같은 주관적 판단 요소를 최소화하며, 심사 기준과 면접위원의 소속 및 신원을 포함한 모든 채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투명성이 예외가 아닌 기본값이 될 때, 비로소 '뒷문'은 닫힐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 외교부는 진정한 능력주의에 기반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변화는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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