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헤이그에서 열린 NATO 정상회의에 참석해 회담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이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와 미국 로이터통신 등이 회담 참석자들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양 정상 간 고성이 오가고 트럼프 대통령이 욕설을 사용하는 등 격앙된 장면이 연출됐다.

회담 하루 전인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장시간 전화 통화를 가졌다. 트럼프는 이 통화를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통화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현재 통제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Donbas)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할양하는 대가로, 러시아가 남부 전선 지역인 헤르손(Kherson)과 자포리자(Zaporizhzhia)주의 일부 작은 지역들을 양보한다는 영토 교환 제안을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회담 내용을 브리핑받은 유럽 관리들을 인용해, 트럼프가 17일 젤렌스키와의 회담에서 푸틴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복했다고 전했다. 한 유럽 관리에 따르면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만약 푸틴이 원한다면, 그는 당신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당시 메시지를 "거래를 하지 않으면 당신의 나라는 얼어붙고 파멸될 것"이라고 요약했다.

다만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가 "파멸"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두 소식통 모두 트럼프가 회담 중 욕설을 사용했다는 점은 확인했다.

토마호크 미사일 확보 실패로 빈손 귀환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우선 목표는 최대 사거리가 약 2,500킬로미터에 달하는 토마호크(Tomahawk) 순항미사일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실전 검증된 첨단 드론 기술을 미국과 공유하는 대가로 토마호크 미사일 제공을 요청했다.

회담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만약 이 전쟁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토마호크를 보낼 수도 있다"고 말하며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푸틴과의 전화 통화에서 푸틴이 토마호크 제공이 미-러 관계에 "상당한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후, 트럼프의 태도는 바뀌었다.

젤렌스키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바라건대 토마호크를 생각할 필요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결국 토마호크 확보에 실패한 채 워싱턴을 떠나야 했다.

"현 위치에서 정지" 제안과 젤렌스키의 전술적 대응

긴장된 회담 끝에 나온 결과물은 현 전선을 따라 분쟁을 동결하자는 제안이었다. 트럼프는 회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양측에 "현 위치에서 정지하라.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하게 하고, 역사가 결정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전선에서 멈추는 것"이 해결책이라며, 이는 사실상 러시아의 영토 획득을 영구적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시사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게시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신중하게 동의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대통령의 말이 맞다. 우리는 현 위치에서 멈추고, 그런 다음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지를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길목의 휴전"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회담 내용을 브리핑받은 소식통들은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깊은 실망감을 전했다. 젤렌스키는 회담 후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일요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침략자에게 아무것도 내주지 않을 것이며, 아무것도 잊지 않을 것"이라며 훨씬 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부다페스트 정상회담을 향한 우려

트럼프와 푸틴은 16일 전화 통화에서 2주 내에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이 회담 준비를 맡고 있다.

백악관 회담 내용을 브리핑받은 유럽 관리들은 깊은 우려를 표했다. 유럽연합(EU) 내에서는 예정된 트럼프-푸틴 부다페스트 회담이 사적으로 "정치적 악몽"으로 불리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의 정책이 자신들의 정책과 급격히 달라질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대비의 일환으로, EU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활용하여 1,400억 유로 규모의 대출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 자금의 일부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용될 예정이다.

분쟁 동결의 전략적 함의

전문가들은 현 전선에서의 휴전이 러시아에 전략적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으로 고통받고 있는 러시아는 휴전을 통해 군대를 재정비하고, 재무장하며, 미래의 공세를 위해 재구성할 시간을 벌게 될 것이다.

반면 분쟁 동결은 러시아의 에너지 및 군사 기반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성공적인 장거리 타격 캠페인을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젤렌스키가 사실상 국토의 20퍼센트 상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국내 정치 위기를 촉발할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분쟁 동결이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을 영구적인 러시아 점령의 공포 속에 가두게 된다는 점이다.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는 대량 추방, 고문, 이념적 세뇌,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체계적인 말살이 자행되고 있다.

백악관과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번 회담 관련 논란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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