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인 메이퇀(美團) 배달 기사들/메이퇀 자료
중국 3대 배달 플랫폼이 배달 기사에 대한 지연 벌금 제도를 일제히 폐지하고 서비스 점수제로 전환하면서, 중국 정부의 플랫폼 경제 규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京東)이 선전과 난징 등 25개 도시에서 배송 시간 초과 벌금 제도를 '서비스 점수' 관리 제도로 전환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알리바바 그룹 산하 어러머(餓了麽) 역시 여러 도시에서 기존 벌금제를 대체할 새로운 서비스 점수제를 도입했으며,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1위인 메이퇀(美團)은 이미 30여 개 도시에서 '지연 배송 무벌금 제도'를 시범 운영 중이며, 올해 말까지 전국적으로 벌금 제도를 전면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벌금제의 가혹한 현실
기존 벌금 제도 하에서 배달 기사들은 교통 체증이나 기상 악화 같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배달이 지연되면 즉각 수입에서 벌금이 공제됐다. 한 배달 기사는 이 제도로 인해 매월 수백 위안(한화 약 10만 원)의 수입 손실을 입었다고 증언했다.
배달 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소득 불안정(62.5%)과 안전사고(52.68%)가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꼽혔는데, 벌금 제도가 야기하는 극심한 시간 압박이 이 두 문제를 모두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이었다.
중국 관영 매체인 공인일보(工人日報)는 "배달 기사는 알고리즘의 종속물이 아니다"라고 비판하며, 당국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점수제로의 전환, 그러나 압박은 여전
새로운 제도는 지연 배송에 대한 직접적인 금전 처벌을 점수 차감으로 대체한다. 배달 기사의 '서비스 점수' 또는 '서비스 스타 등급'은 정시 배송률, 고객 평가 등을 종합해 산출되며, 이 점수가 수입과 직접 연동된다.
메이퇀의 시스템은 우수한 서비스 이력을 가진 기사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부정적 평가를 받았을 때 이를 면책해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규 가입자나 단기 근무자에게는 일정 횟수의 감점 면제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현장의 배달 기사들은 심리적 압박감이 줄었다고 평가하지만, 새로운 현실도 인식하고 있다. 한 기사는 "지연 배송 때문에 나쁜 평가를 받아 다른 사람보다 서비스 점수가 낮아지면, 결국 돈을 더 적게 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주문을 더 빨리 배송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속도 감소했지만 고객 만족도는 상승
메이퇀의 '2025년 배달기사 권익보장 백서'에 따르면, 항저우시 시범 사업 결과 벌금제 폐지로 배달 지연율이 0.8% 소폭 상승했지만, 오히려 고객 불만 제기율은 12%나 감소했다.
이는 속도가 고객 만족의 가장 중요한 척도라는 업계의 오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다. 극심한 시간 압박에서 벗어난 기사들이 난폭 운전을 덜 하고, 음식 훼손 확률이 낮아지며, 친절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 주도의 체계적 규제
이번 변화는 중국 정부가 기술 부문을 규제하는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 당국은 이전부터 배달앱 기업들에게 "과열 경쟁"을 중단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메이퇀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입점 상인들에게 피해를 준 혐의로 1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반독점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국가가 정책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적 처벌을 동원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8개 중앙 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신업태 노동자 권익 보장 의견'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있다. 이 정책은 단체 교섭권 보장, 최저임금 보장, 사회보험 확대 등을 담고 있다.
어러머는 배달 기사들과 공식적인 노동 규칙 협약을 체결하는 첫 사례를 만들었으며, 산둥성 웨이팡과 장쑤성 우장 같은 도시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직업 상해 보험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당 조직의 배달 노동자 집단 침투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배달 노동자 집단 내에 중국공산당 조직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 당 지부들은 임금 체불, 열악한 노동 조건 등 노동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상 정치 사업을 심화하여" 배달 노동자들이 "당의 은혜를 느끼고, 당의 말을 들으며, 당과 함께 가도록 인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배달 기사들이 배송 경로에서 발견하는 식품 안전이나 제품 품질 문제를 상부에 보고하는 '사회 감독원' 역할을 하도록 장려된다.
서구와 다른 중국식 해법
서구 국가들이 긱 이코노미 규제를 위해 주로 노동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나 알고리즘 투명성 논쟁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국가가 알고리즘 설계에 직접 개입하고 당 조직을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이식하는 모델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추천 알고리즘의 세부 사항을 규제하는 국가 단위 규정을 도입한 국가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일상적인 운영과 노동 통제를 담당하고, 국가는 노동자 복지 같은 거시적 목표를 설정하며, 당은 노동자 집단 내부에서 사회적 통제와 고충 처리를 수행하는 3자 거버넌스 모델이 구축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자유나 기업의 자율성보다 사회 안정과 국가 통제를 우선시하는 국가 중심적 모델로, 서구의 자유주의적 접근 방식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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