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도서관이 새로 발급한 오스카 와일드의 출입증/대영도서관 제공
아일랜드 출신의 천재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130년 만에 대영도서관으로부터 상징적인 명예회복 조치를 받았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한 세기에 걸친 인권 의식의 발전과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사회의 노력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문화 기관의 사회적 역할과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이 국제 인권 논의에 미칠 영향에 외교계가 주목하고 있다.
대영도서관은 지난 10월 16일 와일드의 탄생 17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1895년 내려진 열람실 출입 금지 조치를 철회하고, 그의 유일한 손자인 멀린 홀랜드(Merlin Holland)에게 새로운 출입증을 발급했다.
1895년 5월 25일, 와일드는 동성 연인과의 관계로 인해 당시 형법에 따라 '중대한 풍기문란' 혐의로 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6월 15일, 당시 대영박물관 열람실이었던 대영도서관은 이사회를 열어 와일드의 출입 자격을 박탈했다.
캐럴 블랙(Dame Carol Black) 대영도서관 이사회 의장은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 인물 중 한 명이며, 대영도서관은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들의 육필 원고를 소장하고 있다"며 "이번 헌정을 통해 와일드의 기억을 기릴 뿐만 아니라 그가 유죄 판결의 결과로 겪었던 부당함과 엄청난 고통을 인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손자 홀랜드는 "할아버지가 펜톤빌 교도소에 수감된 지 3주 후 대영박물관 열람실 출입증이 취소됐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며,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며 "법이 그를 일상생활에서 추방한 것처럼 세계의 위대한 도서관 중 하나가 그를 책으로부터 추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비참함을 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출입증의 복권은 아름다운 용서의 제스처이며, 할아버지의 영혼이 감동하고 기뻐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와일드가 유죄 판결을 받은 근거는 1885년 제정된 '형법 개정안'으로, 이 법안은 남성 간의 모든 동성애적 행위를 '중대한 풍기문란'으로 규정하고 범죄화했다. 와일드는 이 법의 가장 유명한 희생자로, 그의 재판은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인 성 윤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영국은 1967년에 이르러서야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21세 이상 성인 남성 간의 합의된 동성애 행위를 비범죄화했다. 더 나아가 2017년 영국 정부는 '경찰 및 범죄 법안'을 통해 역사적으로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들을 사후 사면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의 이름을 따 '앨런 튜링법'으로 알려진 이 법은 와일드를 포함한 약 5만 명의 명예를 회복시켰다. 튜링 역시 1952년 와일드와 같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한 뒤 1954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인물이다.
외교계는 이번 조치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분석한다. 첫째, 역사적 과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정부뿐 아니라 박물관, 도서관과 같은 문화 기관 역시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고 사회적 치유 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성 소수자 인권이 보편적 인권의 핵심 요소임을 재확인한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 기관이 역사적인 차별의 희생자를 기리는 것은 성 소수자 인권 존중이 그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임을 시사한다.
셋째,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고 성 소수자를 박해하는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외교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국가들은 문화적, 상징적 외교를 통해 인권 가치를 확산시키는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와일드의 명예회복은 한 개인의 복권을 넘어, 한 사회가 과거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더 포용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인권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 정의 실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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