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네팔의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 총리 정권이 붕괴했다. 정부의 소셜미디어(SNS) 차단 조치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수십 년간 누적된 구조적 부패와 극심한 경제 불평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분노가 폭발한 결과다. 올리 정권의 몰락은 히말라야의 지정학적 지형을 뒤흔들며 친중 노선을 걷던 네팔의 외교 정책에 급제동을 걸었다. 이는 중국의 남아시아 전략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는 동시에 전통적 맹주인 인도에게는 신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구도 변화를 촉발했다. 이번 사태는 네팔 노동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고용허가제(EPS) 운영과 외교 관계에도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붕괴의 서막: 부패와 불평등에 등 돌린 청년들

올리 정권 붕괴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26개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였다. 정부는 비판 여론을 억압하려는 의도였으나, 이는 해외 이주 노동에 의존하는 네팔 사회의 생명줄을 끊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해외 가족과의 소통과 정보 교류의 핵심 창구였던 SNS가 막히자, 청년층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시위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사회경제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위대는 '부패 종식, 투명성, 책임 정치'를 외쳤으며 , 이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완전히 붕괴했음을 의미한다. 소득 상위 10%가 하위 40%보다 3배 이상 많은 소득을 올리는 극심한 불평등과 , 20%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은 젊은 세대를 절망으로 내몰았다. 특히 정치 엘리트 자녀들이 해외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과시하는 '네포 키드(Nepo Kid)' 현상은 고된 해외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시위는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유력 정치인들의 사저 방화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달았고 , 이 과정에서 최소 1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통제 불능의 상황 속에서 올리 총리는 결국 여러 장관과 함께 사임했다.

히말라야의 체스판: 미묘해진 인도·중국 관계

친중 성향이 뚜렷했던 올리 정권의 붕괴는 히말라야의 지정학적 지형에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었다.

중국에게 올리의 실각은 명백한 전략적 실패다. 올리 총리는 네팔을 인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여 중국의 품으로 이끌었던 핵심 동맹이었다. 그의 주도하에 네팔은 2024년 12월 중국의 일대일로(BRI) 프레임워크 협정에 공식 서명했으며 , 시진핑 주석의 글로벌안보구상(GSI)을 지지하는 등 친중 행보를 가속했다. 중국은 "조속한 안정 회복을 희망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내놓았지만 , 특정 정치 엘리트와의 관계에 기반한 중국의 '엘리트 포섭' 전략이 국내 정치 변동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로 인해 네팔 내 BRI 프로젝트의 미래는 극도로 불투명해졌으며, 특히 포카라 국제공항 사례에서 불거진 '부채 함정'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반면 인도에게는 전통적인 영향력을 회복할 기회가 찾아왔다. 올리 총리 집권 기간 동안 네팔은 칼라파니 등 영유권 분쟁 지역을 포함한 새 지도를 제작하며 인도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인도는 네팔의 필수품 공급을 책임지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나 , 올리 정권의 친중 노선으로 입지가 좁아졌었다. 인도 정부는 자국민 안전 확보에 주력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 향후 전통적으로 친인도 성향을 보여온 네팔회의당(Nepali Congress) 등 다양한 정치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영향력 재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향후 네팔의 새 정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비동맹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회복과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중국, 서방 등 모든 파트너로부터 원조와 투자를 유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미칠 파장: 고용허가제와 외교 시험대

네팔의 정치적 붕괴는 국가 경제의 생명선인 이주 노동 시스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에도 연쇄적인 파장을 미칠 수 있다.

네팔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해외 노동자 송금에 의존하는 '송금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부 기능 마비는 노동 허가 발급, 송금 시스템 등 이주 노동 행정 전반의 차질로 이어져 네팔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약 7만 명의 네팔인들에게도 큰 불안 요소다.

특히 대한민국은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네팔 노동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네팔은 EPS의 주요 송출국 중 하나로, 2024년에만 16,300명의 쿼터가 배정되었다. 네팔의 정치 불안은 이러한 노동력 공급망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신규 인력 선발 및 파견 지연, 향후 EPS 협정 갱신 협상 난항 등이 예상된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네팔과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누적 2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제공한 핵심 개발 협력 파트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기존 프로젝트들의 이행에도 심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는 네팔의 새로운 정치 지도부와 신속하게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EPS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과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또한, KOICA 사업을 청년 일자리 창출과 거버넌스 강화 등 네팔의 근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재조정함으로써, 네팔의 장기적 안정에 기여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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