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시험 환자 중 한 명인 Sheila Irvine/Moorfields Eye Hospital 홈페이지 자료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이 개발한 망막 임플란트 '프리마(Prima)' 시스템이 치료 불가능한 실명 환자들의 시력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0월 20일 발표된 국제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진행성 건성 연령 관련 황반변성(AMD) 환자 38명 중 84.4%가 글자와 숫자, 단어를 읽는 능력을 되찾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됐으며, 망막 보철 분야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서양 가로지른 미국-유럽 협력

'프리마베라(PRIMAvera)'로 명명된 이번 임상시험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5개국 17개 임상시험 기관이 참여한 다국적 프로젝트다. 런던의 무어필즈 안과 병원(Moorfields Eye Hospital), 프랑스 보르도, 독일 본 등 유럽 최고 수준의 안과 센터들이 시험을 수행했다.

프리마 기술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다니엘 팔란커(Daniel Palanker) 교수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Neuralink)의 공동 창업자인 맥스 호닥(Max Hodak)이 설립한 임상 단계 의료 기술 기업이다.

독일의 프랑크 홀츠(Frank Holz) 박사, 프랑스와 미국의 호세-알랭 사헬(José-Alain Sahel) 교수, 영국의 마히 무킷(Mahi Muqit) 박사 등 세계 정상급 전문가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했다.

'초소형 태양전지판' 원리로 작동

프리마 시스템은 망막 임플란트, 증강현실 안경, 포켓 프로세서 등 세 가지 핵심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다.

가로세로 각각 2밀리미터, 두께 30마이크로미터(사람 머리카락 굵기 정도)에 불과한 초소형 무선 광전지 칩이 망막 아래 부위에 외과적으로 이식된다. 이 칩에는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378개의 개별 광구동 픽셀이 들어있다.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특수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가 외부 시각 세계를 포착하면, 포켓 프로세서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분석한다. 처리된 이미지는 근적외선 빛 패턴으로 안경을 통해 망막하 임플란트에 투사된다.

임플란트의 광전지 픽셀은 초소형 태양전지판처럼 작동하여 들어오는 근적외선 빛 패턴을 전기 신호로 직접 변환한다. 이 전기 펄스는 죽은 광수용체를 우회하여 살아남은 내부 망막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전기 신호는 자연적인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뇌가 이를 시각 정보로 해석한다.

평균 5줄 읽을 수 있는 시력 회복

임상시험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표준 시력 검사표에서 5줄을 읽을 수 있었으며, 이는 평균 25.5글자의 개선에 해당한다. 일부 환자들은 임플란트 이식 전에 시력 검사표 자체를 볼 수 없었다. 한 참가자는 무려 59글자, 즉 거의 12줄에 달하는 놀라운 시력 개선을 보였다.

무어필즈 안과 병원의 마히 무킷 박사는 이를 인공 시각의 "새로운 시대"라고 평가하며, 이 정도 규모로 실명 환자에게 의미 있는 중심 시력이 복원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런던 무어필즈 안과 병원의 환자 쉴라 어빈(Sheila Irvine)은 임플란트 이전 자신의 시력을 "눈에 두 개의 검은 원반이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녀는 "저는 열렬한 독서광이었고, 그것을 되찾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임플란트 활성화 후 처음으로 글자를 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짜릿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독서 능력을 되찾은 것은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십자말풀이를 하고 작은 글씨로 된 처방전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녀는 "확실히 더 낙관적"으로 느끼게 됐으며, "다시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이 익히게 된다"고 전했다.

안전성 확인... 주변 시력 손상 없어

수술은 숙련된 유리체망막 외과의가 2시간 이내에 수행할 수 있는 최소 침습적 절차다. 심각한 이상 반응이 주로 이식 후 첫 두 달 이내에 발생했지만, 이 중 95%는 해당 기간 내에 해결됐다. 여기에는 안압 상승 및 망막하 출혈과 같은 문제들이 포함됐다.

결정적으로 환자들의 기존 주변 시력에 유의미한 저하가 없어, 수술이 남아있는 자연 시력을 해치지 않는다는 안전성이 확인됐다.

2026년 유럽 승인 기대... 미국은 신속 심사 대상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지난 6월 유럽연합 CE 마크 신청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이 신청은 2024년 11월 임상시험의 독립적인 데이터 안전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만장일치 승인 권고를 받았다. 회사는 2026년에 CE 마크 신청에 대한 결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며, 승인 시 30개 이상의 유럽 국가에서 프리마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3년 프리마를 "혁신 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 Designation)"로 지정했다. 이 제도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비가역적으로 쇠약하게 하는 질환에 대해 더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기기의 심사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고안됐다. 올 봄에는 "인도주의적 사용 기기(Humanitarian Use Device)" 지정을 요청했다.

경쟁 기술 제치고 앞서

프리마 시스템은 이전 세대 망막 보철물인 세컨드 사이트(Second Sight)의 아르거스 II(Argus II)를 크게 능가하는 성과를 보였다. 아르거스 II는 60개의 전극을 가진 망막상 임플란트로 FDA와 CE 마크 승인을 받은 최초의 기기였지만, 기본적인 빛과 형태 인지만 제공했을 뿐 읽기 능력은 복원하지 못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한 연구에서는 평균 3.34년 사용 후 어떤 환자도 아르거스 II 장치를 계속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중단 이유는 낮은 시각적 품질, 높은 인지적 부담, 물리적 불편함, 그리고 회사 지원 부족 등이었다.

호주의 바이오닉 비전 테크놀로지스(Bionic Vision Technologies)는 44개의 전극을 가진 맥락막상 임플란트를 개발해 색소성 망막염 환자 4명을 대상으로 2.5년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장치가 안전하고 이동, 보행, 물체 감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규제 과정에서 프리마보다 몇 년 뒤쳐져 있다.

차세대 개발 진행 중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은 이미 차세대 임플란트와 안경을 개발 중이다. 더 작은 픽셀을 가진 임플란트를 만들어 고해상도 시력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팔란커 교수는 20마이크로미터 픽셀 칩이 20/80 시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현재 임상시험은 건성 AMD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 기술은 광수용체는 퇴화했지만 내부 망막 신경세포가 온전한 모든 망막 질환에 잠재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여기에는 색소성 망막염, 스타가르트병 등이 포함된다.

현재의 흑백 출력을 넘어 회색조 시력을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더 세련되고 사용자 친화적인 안경 디자인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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