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ation for Worldwide International Student Exchange, WISE 홈페이지 캡춰
미국 국무부가 '문화교류'를 명분으로 운영하는 J-1 교환방문 비자 프로그램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 노동 착취의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961년 풀브라이트-헤이즈 법(Fulbright-Hays Act)에 근거해 출범한 이 프로그램은 당초 교육과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 증진이라는 외교적 목적을 표방했으나, 현재는 미국 내 저임금 노동력 공급 창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5일 현지시간 J-1 비자를 미끼로 외국 학생과 연수생을 모집한 뒤 과도한 수수료를 챙기고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모는 이른바 '스폰서'들의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미국의 J-1 비자 입국자는 한 해 30만 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한국인 대학생 강모씨의 피해 사례가 대표적으로 조명됐다.
강씨는 2023년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는 홍보 문구를 보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J-1 비자 익스체인지'라는 단체에 약 5천 달러, 우리 돈 약 725만 원의 수수료를 냈다. 이른바 '스폰서'로 불리는 해당 단체들은 현지의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J-1 비자 학생과 연수생을 모집해 미국 내 업체들과 연결하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스폰서를 통해 취업한 강씨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인디애나주의 한 제철공장에서 정화조 청소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강씨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정화조 청소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자 해고당했고,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강씨는 이 과정에서 스폰서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국무부가 비자 발급의 핵심 과정을 민간에 외주화한 독특한 관리 구조에 있다. 국무부는 직접 교환 방문자를 선발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지정 스폰서(Designated Sponsors)'라 불리는 민간 단체들에게 참가자 심사 및 비자 신청 필수 서류인 DS-2019 발급 권한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스폰서 기관들은 참가자 권리 보호보다는 수수료 수익 극대화와 미국 내 고용주들과의 관계 유지에 치중하는 구조적 이익 상충 상황에 놓였다.
이 같은 스폰서들은 영리 및 비영리 재단 형태로 다수 존재한다. 1990년 설립된 '전세계 국제학생교류재단(Foundation for Worldwide International Student Exchange, WISE)'은 2023년까지 연간 약 3천300명의 J-1 비자 노동자를 모집했다. 수수료 수입만 49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해당 재단을 통해 입국한 외국 학생들은 알래스카주의 한 해산물 가공공장에서 하루 최대 19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에 시달렸다며 J-1 비자를 관할하는 미국 국무부에 신고했다. 2018년에는 이 재단에 J-1 인턴십을 위해 1인당 2천 달러를 내고 온 외국인 학생들이 뉴욕주의 한 산업용 온실로 보내졌다가 성희롱과 부상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2019년에는 네브래스카주의 양돈 농장으로 보내진 이들이 하루 12시간 노동과 치료 제한, 추방 위협에 시달렸다. 이들은 "노예 같았다"고 증언했다. 지난해에는 한 독일인 학생이 오클라호마주의 농장에서 일하다 트럭 타이어 폭발 사고로 두개골이 함몰되면서 중증 장애를 입기도 했다. 반면 재단 운영자들은 연간 52만 달러의 수수료 수입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 이사진은 가족과 친척들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을 세운 데이비드 달(David Dahl)은 뉴욕타임스에 "젊은이들이 미국에서 경험을 쌓고 기술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명했다.
또 다른 스폰서인 '미국외국학습연구소(The American Institute For Foreign Study, AIFS)'는 별도의 보험 회사를 설립해 J-1 비자 입국자들에게 모집 수수료와 별도로 월 최대 100달러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참가자들이 한국에서 이미 충분한 보장 내역을 가진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비자 서류 발급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9년 타결된 오페어(Au Pair) 집단 소송은 J-1 프로그램 전반에 걸친 임금 착취 카르텔의 존재를 입증했다.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오페어 참가자들은 15개 거대 스폰서 기업들이 서로 담합해 오페어들의 임금을 연방 최저임금 수준으로 묶어두고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스폰서들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6천550만 달러, 우리 돈 약 850억 원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미국 국무부 영사국과 유학생 및 교환방문자 정보 시스템(SEVIS) 데이터에 따르면, J-1 비자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30만 건 이상 발급되는 거대 프로그램이다. 한국은 중국, 영국, 독일 등과 함께 J-1 비자의 최상위 송출국 그룹에 속한다. 특히 기업 인턴십(Intern) 및 전문직 연수(Trainee) 카테고리에서 한국인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 12월 미국 국무부는 J-1 비자 소지자의 '2년 본국 거주 의무' 적용 대상 국가 목록을 대폭 수정하며 한국을 포함한 40여 개국을 제외했다. 이는 한국인 J-1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종료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 내에서 취업 비자 등으로 신분 변경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용이하게 만들었다.
2013년 미국 의회에서는 J-1 비자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 시도가 있었다. 당시 '8인의 갱(Gang of Eight)'이라 불리는 상원의원들이 주도한 포괄적 이민 개혁 법안(S.744)은 J-1 비자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모집 과정에서 '해외 노동자 모집 수수료' 징수를 전면 금지하고, J-1 참가자를 명확한 '노동자'로 규정해 미국 노동법의 보호 아래 두려는 내용을 담았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의원 등은 J-1 프로그램이 미국 청년들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임금을 하락시키는 주범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시도는 관련 업계의 강력한 로비 벽에 부딪혀 무산됐다. 국제교육교류협의회(CIEE), 세계청년학생여행연맹(WYSE) 등 스폰서 이익 단체들은 의회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쳤다. 이들은 "참가자를 노동자로 규정하고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게 하면 프로그램 비용이 상승해 문화 교류 자체가 소멸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결국 스폰서들의 로비로 인해 수수료 금지 조항 등 핵심 규제들이 삭제되거나 대폭 완화됐고, 법안 자체도 하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국무부도 스폰서들의 파행적 운영 실태를 모르지 않지만, 형식적인 감독에만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은 J-1 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실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외교부는 '해외 인턴십 피해 예방 매뉴얼'을 제작·배포하고 주요 대학을 순회하며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WEST(Work, English Study, Travel) 프로그램은 정부가 직접 검증된 스폰서를 선정해 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설 에이전시를 통한 참가자들의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매우 좁다. J-1 비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 국내법과 사인 간 계약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 영사가 미국 고용주나 스폰서를 상대로 직접적인 수사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
국제적인 노동권 단체들도 이 문제에 나서고 있다. 국제노동모집실무그룹(International Labor Recruitment Working Group, ILRWG)은 J-1 비자를 포함한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다. 이들은 "여름 아르바이트에 빛을 비추다(Shining a Light on Summer Work)"와 같은 보고서를 통해 스폰서와 고용주 명단을 공개하고 투명성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한미 영사 국장 회의 등 고위급 외교 채널을 통해 J-1 비자 악용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우려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인 피해가 집중된 악덕 스폰서에 대한 미국 국무부 차원의 특별 감사를 요구하고, 긴급 상황 발생 시 스폰서를 거치지 않고 미국 국무부 담당 부서와 한국 영사관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J-1 핫라인'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매년 수천 명의 한국 청년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꿈이 아닌 악몽이어서는 안 된다. J-1 비자 문제는 단순한 노무 갈등이 아니라 자국민 보호라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가 걸린 외교적 사안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보호자로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설 때다.
#J-1비자 #노동착취 #뉴욕타임스 #한국청년 #외교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