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프놈펜)/창조건축 자료


고수익을 약속받고 캄보디아로 떠난 한국 청년들이 납치·감금되어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도박 등 범죄 조직에 강제 동원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대응은 "현지 경찰에 직접 신고하라"는 답변으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재외국민보호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 사례다.

범죄의 늪에 빠진 청년들, "새벽이라" 문 열지 않은 대사관

캄보디아 시하누크빌과 포이펫 등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된 특별경제구역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로 변모했다. 이 지역들은 현지 경찰력조차 미치지 못하는 '국가 안의 국가'와 같은 행태를 보이며, 거리의 간판 대부분이 중국어로 채워지는 상황이다.

복수의 피해자 증언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감금된 피해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부로 타전한 구조 요청에 대해 대사관 측은 "현지 경찰에 직접 신고하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납치·감금 상태에 놓여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외부와의 소통이 극도로 제한된 피해자에게 이는 사실상 구조 포기와 다름없는 처사였다.

1년 전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범죄 조직에 납치되었던 40대 남성이 건물 6층에서 뛰어내려 극적으로 탈출한 뒤 피신을 위해 대사관을 찾았으나, "새벽"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아 길 위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대사관 측은 '본인 신고 원칙'이 대사관의 자체 방침이 아니라 현지 캄보디아 경찰의 공식적인 요구사항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외교 공관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주재국 정부와 경찰을 상대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외교적 교섭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주 정도 알았다" 외교부 장관 답변에 국회 발칵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신고는 2021년 4건에 불과했으나 2024년 220건으로 폭증했고, 올해에는 8월까지만 330건이 접수되는 등 이미 위험 신호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가 해당 지역의 여행경보를 상향 조정한 것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9월에 이르러서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캄보디아 사태의 심각성을 언제 인지했느냐는 질의에 "지난주 정도"라고 답변했다. 이는 현지 대사관에서 폭증하는 사건 보고가 본부의 지휘 라인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보고되었더라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외교부는 구출된 피해자 중 "자발적 가담자가 많다"는 점을 부각했다. 공교롭게도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 역시 "희생자들은 대부분 불법 일자리에 지원한 사람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자국민을 더 잘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양국 정부가 자국민 보호 실패와 치안 관리 부실이라는 각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피해자 책임론'이라는 서사를 공유하는 이해관계의 일치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주 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프놈펜)/창조건축 자료


민간이 떠안은 국가의 책무, 사재 4억원 지출한 교민 지도자들

국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의 책무를 떠안은 것은 현지의 교민 사회였다. 주캄보디아 한인회와 현지 선교사, 교민 사업가들은 사실상 민간 구조대로 활동하며 위험에 처한 청년들을 구출하는 데 사투를 벌였다.

현지 교민 사회의 증언에 따르면, 정부 예산이 없어 피해자들의 비자 벌금, 항공권 비용 등을 교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해결하는 실정이다. 한인회장 등 일부 교민 사회 지도자들은 이 과정에서 사재 4억원 이상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구출 활동 과정에서 중국계 범죄 조직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 등 신변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이,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다 또 다른 위험에 처하는 역할의 전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출국자 246% 폭증했으나 보호 예산은 동결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우리 국민 해외 출국자 수는 2,271만명으로 전년(655만명) 대비 246%라는 경이적인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어 올해 말에는 3,000만명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출국자 수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우리 국민이 연루되는 사건·사고의 증가로 이어진다. 2023년 재외국민 사건·사고 건수는 전년 대비 약 20%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 9월까지 접수된 건수만 해도 17,662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증가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65건의 사건·사고가 해외에서 우리 국민에게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3년부터 올해 9월까지 재외공관에 접수된 사건·사고 관련 우리 국민 38,854명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22,463명으로 전체의 57.8%를 차지했다. 이는 유럽(27.1%), 미주(11.1%) 등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러나 외교부의 2024년도 총지출은 4조 1,9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4.8%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재외국민 보호' 본예산은 2023년 155억원에서 올해 155억원으로 사실상 동결되었으며, 세부 항목 조정으로 인해 오히려 0.2% 감소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예산의 '내용'이다. 올해 예산안에서 '해외 안전정보 제공서비스 운영' 항목은 4억원에서 12억원으로 165.3%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문자메시지, 앱, 홈페이지 등을 통해 해외 위험 정보를 알리는, 소위 '예방' 활동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캄보디아 사태처럼 이미 발생한 사건에 직접 개입하여 국민을 구조하고 지원하는 '적극적 보호' 활동을 위한 예산은 제자리걸음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비용과 외교적 부담이 큰 직접 개입보다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알려줄 의무는 다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부담 원칙' 법제화, 국가 면책 논리로 활용

2019년 제정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의 태생적 한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법은 재외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영사조력 의무를 법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법의 실제 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의무와 함께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조항들이 국가의 면책 논리로 활용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기부담 원칙'이다. 영사조력법 시행 관련 지침에 따르면, 영사조력 제공 시 발생하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재외국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물론 연고자가 없거나 무자력 상태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국가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 예외 규정은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캄보디아 사태에서 교민 사회가 사재를 털어 피해자들의 비자 벌금과 항공료를 대신 내준 것은 바로 이 '자기부담 원칙'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복되는 국정감사 지적에도 개선 없는 악순환

캄보디아 사태에서 드러난 재외공관의 무능과 외교부의 늑장 대응은 결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국회 국정감사 회의록과 과거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현재의 논란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사례들이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2013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는 주태국 대한민국 대사관의 재외국민 방치 사건이 드러났다. 마약 소지 혐의를 부인하던 우리 국민이 태국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나, 담당 영사는 최초 면담 이후 사건을 '종결'로 처리하고 무려 1년 11개월 동안 단 한 차례의 추가 영사 면담도 없이 해당 국민을 그대로 방치했다.

감사원의 지적에 따르면, 외교부는 '재외국민등록' 시스템을 부실하게 운영하여 관할지에 실제 거주하는 우리 국민의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재난이나 정변 발생 시 우리 국민의 안전을 확인하고 대피 계획을 수립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본부와 재외공관을 잇는 핵심 소통 수단인 '외교정보전용망'의 실태다. 최근 3년간 전체 재외공관 190곳 중 84.7%에 달하는 161곳에서 이 전용망의 회선 및 장비 장애가 한 차례 이상 발생했다. 이 네트워크는 기밀 외교 문서를 주고받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긴급 여권 발급, 신속 해외송금 지원, 비자 발급 등 대민 영사 서비스의 전산 처리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수단이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재외공관의 부실 대응, 예산 부족, 전문성 결여 등의 문제가 단골 메뉴처럼 지적되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교부는 국회의 지적에 대해 원론적인 개선 약속을 반복하고, 잠시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원래의 관성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주 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프놈펜)/창조건축 자료


선진국은 '서비스'로 제공, 우리는 '시혜'로 인식

미국 국무부는 '해외시민서비스(American Citizen Services, ACS)'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영사 조력을 국가의 시혜적 조치가 아닌,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전문적인 '서비스'로 규정한다. ACS는 일상적인 여권 발급, 출생신고 등의 '일반 서비스'와 위기 상황에 처한 국민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명확히 구분한다.

특별 서비스에는 범죄 피해자 지원, 실종자 소재 파악, 긴급 재정 지원, 사망자 처리 지원, 체포·구금된 자국민 영사 접견, 국제 아동 탈취 문제 대응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제공 가능한 서비스 목록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국민들은 자신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명확히 예측할 수 있다. 또한, 24시간 운영되는 긴급 연락처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자국민이 국가와 연결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영국 외무영연방개발부(FCDO)의 영사 조력 시스템은 '영사 헌장(Consular Charter)'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 이 헌장은 정부가 자국민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그리고 국민은 정부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명시한 일종의 사회 계약서다.

헌장은 매우 구체적인 서비스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자국민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통보를 받은 후 24시간 이내에 연락을 취한다", "체포 또는 구금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후 24시간 이내에 연락을 취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시간 목표를 명시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자신의 임무 수행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제공한다.

영국 시스템의 또 다른 핵심적인 특징은 독자적인 재원 조달 방식이다. 영국의 영사 서비스는 일반 세금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대신, 모든 영국 여권 발급 비용에 포함된 15.50파운드의 '영사 분담금(consular premium)'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이 방식은 영사 서비스 예산을 정치적 상황이나 다른 외교 우선순위와의 경쟁에서 독립시켜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일본의 재외국민보호 시스템은 성문법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내부 '매뉴얼'과 '지침'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예방이 최선의 보호'라는 철학 아래,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보 제공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다.

전문가들 "영사 헌장 제정·독립 재원 확보 시급"

전문가들은 붕괴된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처방과 중장기적 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장 실행 가능한 단기 과제로는 납치, 감금 등 위급 상황에서 '본인 직접 신고'와 같은 비현실적이고 경직된 내부 지침을 즉시 폐기하고, 위기 상황 판단 시 현장 영사에게 선조치 후보고할 수 있는 재량권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등 범죄 다발 고위험 지역을 담당하는 '신속대응팀'을 외교부 본부에 상설 조직으로 신설하고, 이미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한인회, 선교 단체 등 민간 네트워크를 공식적인 '영사 협력 기관'으로 지정하여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장기적 개혁 과제로는 영국의 '영사 헌장'을 벤치마킹하여, 국가가 재외국민에게 제공하는 영사 조력의 구체적인 내용과 서비스 기준, 처리 기한 등을 명시한 대국민 약속, 즉 '대한민국 영사 헌장'을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영국의 '영사 분담금' 제도와 같이, 여권 발급 수수료의 일부를 '재외국민보호기금'으로 적립하여 영사 서비스 전용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외교부 내에 '영사 전문가' 직군을 신설하여, 채용 단계부터 별도로 선발하고 위기관리, 협상, 현지 법률, 심리 상담 등 고도로 전문화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해외에 있는 국민이라고 해서 그 보호의 의무가 결코 가벼워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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