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 모습/대통령실 자료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는 통상적인 성과 발표 자리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IIAC) 사장을 향해 두 가지 핵심 사안에 대해 강도 높은 질책을 쏟아냈다. 불법 외화 반출 탐지 실패와 이집트 공항 운영권 수주 사업에서의 소극적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통령의 첫 번째 지적은 공항 보안 검색 과정에서 불법 외화 반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불법적인 외화 반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 사장은 "공사의 주된 소관 업무가 아니며, 우리는 주로 위해 물품(폭발물 등)을 검색한다"며 책임을 관세청 등 타 기관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현대 공항 보안 기술의 실제 능력을 망각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인천공항이 운영 중인 최신 듀얼 에너지(Dual-Energy)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CT) 스캐너는 폭발물뿐만 아니라 고밀도 유기물인 지폐 뭉치를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폭발물만 찾는다"는 변명, 기술적으로 성립 안 해

외화 밀반출은 마약 거래, 테러 자금 조달, 자금 세탁 등 국제 범죄 조직의 핵심 자금 이동 수단이다. 범죄자들은 두꺼운 책 속을 파내어 현금을 숨기거나 페이지 사이에 지폐를 끼워 넣는 등 교묘한 수법을 동원한다. 노트북 배터리 공간이나 조리기 내부에 현금을 은닉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금 뭉치가 엑스레이 화면에서 폭발물과 매우 유사한 고밀도 유기물 덩어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폐는 면 75%와 마 25%의 혼방 섬유로 이루어져 일반 종이보다 밀도가 높아, 뭉쳐놓을 경우 주황색 덩어리 형태로 선명하게 보인다. 보안 검색 요원은 폭발물 탐지 매뉴얼에 따라 이러한 정체불명의 고밀도 유기물을 반드시 개봉 검사해야 한다.

인천공항이 제2여객터미널을 중심으로 도입한 CT 스캐너는 의료용 단층 촬영기처럼 수하물을 360도 회전하며 3차원 입체 영상으로 분석한다. 이 장비는 가방을 열지 않고도 책 속에 숨겨진 이물질이나 현금 뭉치를 명확히 식별할 수 있다. 미국 교통보안청(TSA)은 CT 스캐너가 "대량의 현금을 쉽게 탐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안 장비 제조사인 스미스 디텍션(Smiths Detection) 등은 이미 '아이씨모어 커런시(iCMORE Currency)'와 같은 자동 화폐 인식 소프트웨어를 상용화했다.

◆ 이집트 공항 수주전, "검토 중"으로 일관하며 골든타임 허비

두 번째 질책은 이집트 공항 운영권 수주 사업에 대한 미온적 태도였다. 이집트 정부는 2030년까지 관광객 3천만 명 유치를 목표로 총 11개 공항의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민관협력사업(PPP)을 추진 중이다. 연간 이용객 1천만 명을 상회하는 후르가다 국제공항(Hurghada International Airport)이 첫 번째 대상이며, 2024-25 회계연도에만 여객이 22% 증가한 알짜 공항이다.

지난 11월 이재명 대통령은 이집트 카이로를 국빈 방문해 압델 파타 엘시시(Abdel Fattah El-Sisi)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은 한-이집트 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대규모 방산 수출과 인프라 투자를 연계하는 패키지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12일 업무보고에서 이학재 사장은 "이집트 당국과 의사 타진 중이나 구체화된 것은 없다", "실무적 차원에서의 접근은 아직"이라는 안일한 답변을 내놓았다. 국제금융공사(IFC)와 이집트 정부는 이미 올해 3월 민영화 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로드맵을 발표했다. 12월까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것은 입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정보를 놓쳤다는 자백에 가깝다.

◆ 튀르키예·프랑스 등 경쟁국 총공세 속 한국만 주춤

인천공항이 머뭇거리는 사이 경쟁국들은 국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튀르키예의 타브 에어포츠(TAV Airports)는 지난 10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 해빙을 활용해 공세를 강화했다. 세르칸 캅탄(Serkan Kaptan) 최고경영자(CEO)는 이집트 장관과 면담하며 후르가다 입찰 참여 의사를 밝혔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의 방문과 40억 유로 규모의 차관 제공을 앞세워 뱅시 에어포츠(Vinci Airports)와 에어로포르 드 파리(ADP) 그룹을 밀어주고 있다. 독일의 프라포트(Fraport)는 과거 카이로 공항 위탁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대사의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인도의 지엠알(GMR)도 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나섰다.

◆ 낙하산 인사 논란과 C등급 경영평가의 그림자

이번 사태는 이학재 사장 개인의 역량 부족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인천 서구청장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인 이 사장은 항공 분야 전문 경력이 전무하다. 취임 초부터 전문성 논란에 시달렸으며, 이번 보안 검색 관련 답변에서 드러난 기술적 이해도 부족은 그 우려가 현실임을 증명했다.

이학재 체제 하에서 인천공항공사의 경영 실적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세계 1위 공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202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등급(보통)을 받았다. 이는 내부 관리 능력 부재와 기강 해이, 잇따른 안전 사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공사의 핵심 수익원인 면세점 사업에서도 신라·신세계 등 대형 사업자가 높은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15년간 공사가 수주한 해외 사업의 61%(37건 중 23건)가 적자를 기록했다는 보고도 있다. 4조 원 규모의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 개발 사업을 최대 성과로 홍보하고 있지만, 몬테네그로 공항 운영권 입찰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했음에도 경쟁사의 소송과 정무적 리스크로 최종 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질책은 단순한 업무 지적을 넘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안보와 세일즈 외교 기조가 일선 공기업 현장에서 무력화되고 있다는 위기 의식의 표출이다. 공항이 단순한 교통 시설이 아니라 국경을 지키는 경제 안보의 최전선이자, 국부를 창출하는 해외 진출의 교두보임을 자각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를 행정적 업무 분장 문제로 축소시키는 우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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