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열린 '먼 나라 이웃나라 음식축제' 모습/외교신문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한국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St. Nicholas Cathedral)에서 열린 '먼 나라 이웃나라 음식축제'가 신앙과 음식을 통해 국제 공동체의 이해를 넓히는 풀뿌리 문화외교의 장으로 성황을 이뤘다.
2011년 첫 시작 이후 14년째 이어져 온 이 축제는 대성당 앞마당에서 펼쳐졌다. 성 니콜라스 성당에서는 매주 일요일 그리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불가리아, 죠지아, 마케도니아 등 정교회가 국교인 나라에서 온 신자들은 물론 프랑스, 미국, 캐나다, 레바논, 브라질 등 다양한 국적의 정교회 신자들이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성찬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이번 행사를 위해 일주일 전부터 정성껏 자국의 전통음식을 준비했으며,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도 이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전문 음식판매업체나 요리사가 아닌 신자들이 직접 준비한 요리들이 판매대를 채운다는 점이 이 축제의 특징이다.
2017년 6월에 있었던 음식축제 때 미카엘 셰프가 자신의 요리를 서빙하고 있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예외가 있었다면 2017년 당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였던 전문 셰프 미카엘 아쉬미노프(Mikael Ashminov)가 참여해서 불가리아의 전통요리를 선보인 적이 있었다. 미카엘 아쉬미노프는 수년간에 걸쳐서 매달 한 번씩 일요일 성찬예배가 끝난 후 신자들의 점심을 위해 직접 요리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번 행사에서 그의 솜씨를 맛볼 수는 없었다.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국제 문화교류
축제는 성찬예배 직후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성당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성당 마당에는 이미 이 행사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행사를 처음 알게 된 비신자들이 접시와 식기를 들고 판매대 앞에 긴 줄을 만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와 슬라브민족 국가들의 대표적인 요리인 샤슬릭, 즉 쇠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구운 요리를 굽는 냄새와 연기가 성당 마당에 퍼지면서 행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방문객들과 신자들은 함께 어울리며 세계 각국의 맛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축제에서 제공된 이국적 음식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축제에서 제공된 이국적 음식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축제에서 제공된 이국적 음식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축제에서 제공된 이국적 음식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축제에서 제공된 이국적 음식들/신데스모스 제공 자료
축제 운영은 전적으로 신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 요리부터 가판대 설치, 설거지, 뒷정리까지 모든 과정에 신자들이 직접 나섰다. 특히 교회 청년회인 신데스모스(협동과 단결 등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로 개신교의 기독교청년회와 비슷한 활동을 하는 조직)의 회원들은 텐트와 테이블 설치, 음료수와 판매대 운영, 청소 등 행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축제는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열렸다. 2011년부터 매년 봄 5월에서 6월과 가을 10월에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서울에 소재한 국제공동체 사이에서 소중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5월 26일에 열린 봄 축제에 이어 이번 가을 축제 역시 높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19일 열린 '먼 나라 이웃나라 음식축제' 모습/외교신문
19일 열린 '먼 나라 이웃나라 음식축제' 모습/외교신문
19일 열린 '먼 나라 이웃나라 음식축제' 모습/외교신문
그리스 대사관의 적극 후원
주한 그리스 대사관은 이 축제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1930년에 이스탄불로 개칭되었어도 정교회에서는 여전히 옛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의 세계 총대주교청(Ecumenical Patriarchate of Constantinople)의 영적 관할 하에 있는 한국정교회와 그리스 정부 간의 긴밀한 유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는 한국정교회의 소티리오스 트람바스(Sotirios Trambas) 초대 대주교가 2022년 선종했으며 현재의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Ambrosios Zografos), 한국명 조성암 대주교가 모두 그리스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시련 극복한 한국정교회 120여년 역사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한국정교회의 역사를 응축하고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1900년 러시아 정교회의 흐리산트 셰헷콥스키(Chrysanthos Shchyotkovsky) 대수도사제가 정동 소재의 러시아 공사관에서 한국 최초의 성찬예배를 인도하면서 한국정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선에 파견된 러시아인들을 위한 성찬예배 의식은 곧 선교활동으로 이어졌고 공사관 인근에 성당도 짓고 한국인도 사제서품을 받는다. 그가 최초의 한국인 정교회 신부 알렉세이 김의한이다.
그러나 러일전쟁과 러시아 대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한국정교회는 시련을 겪기 시작한다. 일제는 러시아인과 선교사들을 추방했으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소련은 정교회 선교사업을 폐쇄했고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알렉세이 김의한 신부는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다. 졸지에 고아 처지가 되어버린 한국 내 정교회 신자들은 급기야 적성국가인 소련의 종교를 믿는다는 무식하고 황당한 오해까지 받는다.
이렇게 어려운 전쟁시기를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던 정교회 신자들에게 희망이 생기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이었다. 유엔 참전국 중의 하나였던 그리스에서 파병된 그리스 정교회 종군사제들이 한국에 정교회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세계총대교구청에 알리면서 교회는 다시 회생의 기회를 맞는다.
1955년부터 세계총대교구 산하 뉴질랜드 교구에 속하면서 그리스 정교회의 선교와 지원을 받기 시작했으며 아현동 소재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1968년에 준공된다. 1975년 40대 중반의 그리스인 사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신부가 한국에 오면서 한국정교회의 발전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한국의 정교회와 신자들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의 사제들, 봉사자들, 일반신자들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한편, 다수의 한국인 사제들이 배출된 것도 이 무렵이다.
소티리오스 신부는 1993년에 주교로 선출되었으며 마침내 2004년에는 뉴질랜드 대교구에서 독립해서 명실상부한 '한국정교회'가 되었고 그해 6월 20일 이곳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는 소티리오스 대주교 착좌식이 성대하게 올려진다.
그리고 4년 후 2008년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주교가 대주교로 선출되면서 제2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고 현재에 이른다. 현재 한국정교회는 전국 7곳에 성당과 2개의 수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회원으로 교회일치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음식 너머 문화와 종교의 이해로
각국의 음식을 맛보는 와중에도 축제 방문객들을 위해 성당 내부에서는 정교회 소개와 성화(聖畵:Icon, 정교회에서 예배와 신앙생활에 사용하는 거룩한 그림)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했다. 단순히 이국적 음식을 맛본다는 경험을 뛰어넘어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장벽도 허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이번 축제는 신앙과 음식을 통해 이해의 다리를 놓는 국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리였다. 내년 봄에도 이 뜻깊은 행사가 계속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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