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이 1월 7일 대서양 아이슬란드 남방 해역에서 나포한 러시아 국적 초대형 원유운반선 '마리네라(Marinera)' 호. 이 선박은 원래 '벨라 1(Bella 1)'이라는 이름으로 가이아나 국기를 달고 운항하다 추적을 받자 급히 선명을 바꾸고 러시아 선적으로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USNI 자료 캡춰
2026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인근 해역이 국제 제재를 회피하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의 활동 무대로 전락하면서 환경 및 안보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해상 차단 작전이 대서양에서 전개되는 가운데, 동해상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연루된 대규모 불법 환적 사건이 포착돼 한국 정부의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초 동해 공해상에서 러시아 국적 유조선 '카피탄 코스티체프(Kapitan Kostichev)'와 카메룬 선적 유령선 '준 통(Jun Tong)'이 은밀히 접선해 약 7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환적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선박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고의로 끈 채 작업을 진행했으며, 환적을 마친 준 통 호는 중국 산둥성 옌타이(Yantai) 항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은 미국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을 전격 체포하고 '절대적 결의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을 통해 제재 위반 선박에 대한 물리적 나포에 나서면서 국제 해양 질서가 격변하는 시점에 발생했다. 미 특수부대는 1월 3일 새벽 카라카스를 급습해 마두로 대통령과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Cilia Flores)를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
미 해군은 1월 7일 대서양 아이슬란드 남방 해역에서 러시아 국적 초대형 원유운반선 '마리네라(Marinera)' 호를 나포했다. 이 선박은 원래 '벨라 1(Bella 1)'이라는 이름으로 가이아나 국기를 달고 운항하다 추적을 받자 급히 선명을 바꾸고 러시아 선적으로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리브해에서는 파나마 선적 'M 소피아(M Sophia)' 호도 추가로 억류됐다.
전문가들은 동해상 불법 환적이 서방의 가격 상한제를 우회하려는 시도이자, 러시아-중국 간 에너지 밀월 관계를 입증하는 사례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사할린-1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원유가 동해를 거쳐 중국으로 직수송되는 루트는 북한의 불법 유류 반입 경로와 지리적으로 중첩돼 한반도 안보에 이중 위협이 되고 있다.
환경 재앙 우려도 커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준 통 호는 2008년 건조된 18년 된 노후 선박이며, 과거 '페어 시즈(Fair Seas)', '타이 산(Tai Shan)'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다 최근 선명을 바꾼 전형적인 그림자 선단 소속 선박이다. 카피탄 코스티체프 호는 2005년 건조된 21년 선령의 유조선으로, 두 선박 모두 겨울철 동해의 거친 파도를 견딜 수 있는 구조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선박은 국제 P&I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사고 발생 시 복구 비용은 인접국인 한국과 일본이 떠안아야 한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는 동아시아 해역에서 그림자 선단 사고 발생 시 예상 정화 비용을 최소 8억 5900만 달러에서 최대 16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림자 선단의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에너지 데이터 분석 기업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2026년 초 기준 그림자 선단은 약 3300척에 달하며,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6~7%를 처리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2800% 이상 급증한 수치다.
이들 선단은 AIS 스푸핑(가짜 위치 신호 송출), 선박 세탁(선명·선적 수시 변경), 불법 환적 등 고도화된 기만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카메룬이나 가봉 같은 편의치적국의 국기를 달고 국제 해사 기구의 감시망을 피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해양 도메인 인식(MDA) 능력 강화와 항만국 통제 강화 등 다각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과 광역 해양 감시용 무인기를 활용한 실시간 감시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AIS를 고의로 끄거나 조작하는 행위를 중대 해사 안전 위반으로 규정하는 국내법 정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외교적으로는 러시아와의 핫라인을 통해 불법 환적이 한국 해양 환경에 미치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중국과는 공동 단속 가능성을 타진하는 실용적 접근이 요구된다. 동시에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에 대비한 긴급 방제 기금 조성과 방제 자산의 전진 배치도 서둘러야 할 과제로 꼽힌다.
북한은 마두로 체포를 자신들에 대한 미국의 '참수 작전' 예고편으로 받아들이고 핵무기 고도화 명분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도 1월 동해와 동중국해에서 잠수함이 포함된 사상 최초의 연합 초계 작전을 수행하며 미국의 해상 봉쇄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한반도 해역이 국제 제재 회피의 안전지대가 아니라 환경 재앙과 안보 위협의 최전선으로 부상하면서, 한국의 전략적 대응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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