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협상 체계를 가동했다. 외교부는 9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임갑수 한미원자력협력 정부대표 주재로 '한미원자력협력 범정부협의체(TF)' 첫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TF 출범은 반세기 동안 제약받아온 한국 원자력계의 숙원 사업 해결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이날 회의에는 외교부를 비롯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 등 8개 핵심 기관의 국장급 인사가 참석했다. 외교부는 지난 5일 부내 별도 TF를 구성해 정부대표를 지원하는 체계도 갖췄다.
협상을 총괄할 임갑수 대표는 주루마니아 대사 출신으로 2016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확산 전문관을 역임한 원자력 외교 전문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실에서 북핵 문제를 다룬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핵확산 문제에 정통한 인물을 협상 대표로 내세운 것은 한국의 농축·재처리 요구가 평화적 이용 목적임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이번 TF 출범의 직접적 배경은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공동 팩트시트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은 양자 간 123 협정과 미국의 법적 요건에 부합하는 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미국이 과거 불허 입장에서 선회한 것으로, 한국 정부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협상의 시급성은 국내 원전 사정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은 올해 말 95%를 초과해 사실상 포화 상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빛 원전도 2029년, 월성 원전도 2033년 각각 저장 한계에 도달할 전망이다. 재처리 기술 없이는 원전의 지속적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라늄 공급망 불안정도 농축 권한 확보를 재촉하는 요인이다. 올해 1월 9일 기준 우라늄 현물 가격은 파운드당 82.75달러로 지난해 6월 59.58달러 대비 급등했다. 한국은 2023년 기준 러시아로부터 약 3억4000만 달러, 영국으로부터 2억1000만 달러의 농축 우라늄을 수입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공급선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특히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기술의 비확산성을 강조하며 미국을 설득할 방침이다. 한국은 2011년부터 미국과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를 진행해왔으며, 이 기술은 플루토늄을 단독 분리하지 않아 기존 재처리 방식보다 핵확산 저항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토론회에서 "한국은 사실상 에너지 섬이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 공급에 한계가 있다"며 원자력 발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과거 탈원전론자였던 김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현 정부의 실용주의적 에너지 정책 전환을 상징한다.
외교부는 향후 국장급 회의와 실무협의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여 대미 협상 논리를 개발하고, 123 협정의 개정 또는 유연한 적용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라며 "범정부 차원의 치밀한 준비를 통해 한미 원자력 동맹을 전략적 차원으로 격상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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