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하이싱 신임 부장/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 홈페이지 캡춰
중국 외교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차기 외교부장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류젠차오(61)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두 달여간의 실종 끝에 9월 30일 전격 교체됐다. 후임으로는 국가안전위원회(NSC) 출신의 류하이싱(62)이 임명되면서 중국 외교의 '안보화'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류젠차오 부장은 지난 7월 말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이후 모든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9월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시에도 당 대 당 외교를 총괄하는 대외연락부장 본인 대신 리밍샹 부부장이 영접에 나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그가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당국은 어떠한 공식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류젠차오의 낙마는 2023년 7월 친강(59) 전 외교부장이 해임된 지 불과 1년여 만에 발생한 최고위급 외교관의 연쇄 퇴출이다. 두 사람 모두 영어에 능통하고 대미 외교 경험이 풍부한 인물로, 시진핑 주석의 총애를 받으며 중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해 발탁됐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개인적 인기를 얻는 순간 시진핑 주석의 '핵심' 권위와 충돌하며 숙청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림자 외교부장' 역할이 화근
옥스퍼드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한 류젠차오는 외교부 대변인과 주필리핀·주인도네시아 대사를 거친 전통 외교 엘리트였다. 2022년 6월 대외연락부장에 취임한 이후 그는 이 부서의 역할을 전례 없이 확장했다. 전통적으로 북한,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당 대 당' 외교를 담당하던 대외연락부를 중국의 대외 이미지 향상을 위한 전진 기지로 탈바꿈시켰다.
2023년 1월 류젠차오는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을 방문해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존 파이너 등 최고위급 관료들과 회동했다. 미국외교협회(CFR)에서는 "전랑 외교라는 게 있었다고 믿지 않고, 따라서 그 같은 외교로 돌아갈 일도 없다"고 발언하며 강경 일변도의 중국 외교 노선과 거리를 뒀다. 18개국을 순방하며 '그림자 외교부장' 역할을 자처한 그의 행보는 국가 간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WSJ는 중국 지도부가 류젠차오가 공식 직함을 받기 전 해외에서 차기 외교부장 행세를 하는 것에 분노해 제동을 걸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집권 하에서 외교 정책은 당 중앙외사판공실이 총괄하며, 외교부장직은 그 지시를 이행하는 역할로 축소됐다. 류젠차오의 과도한 활약과 개인 브랜드 구축은 중앙의 통제권을 벗어난 '월권'으로 해석됐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희생된 아이러니
류젠차오의 낙마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중앙기율검사위원회(CCDI) 국제협력국장 및 국가부패예방국 부국장을 역임하며 시진핑 주석의 해외 반부패 작전인 '여우 사냥(Fox Hunt)' 및 '천망(Sky Net)' 작전을 총괄 지휘했다는 사실이다. 이 작전은 해외 도피자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강제 송환하는 데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천 명의 강제 송환을 명령했던 그 자신이 바로 이 시스템의 잠재적 대상이 된 것이다. 장관급 고위 당직자였던 그가 중국 공산당 내부의 규율 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중국의 초법규적인 비밀 구금 및 조사 시스템인 '리우즈(留置)'의 적용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구축을 도왔던 시스템에 의해 낙마한 것은 반부패 시스템이 순수한 부패 척결이 아닌 충성도 검증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종속돼 있음을 입증한다.
NSC 출신 후임자, '안보화' 외교 본격화
류젠차오의 뒤를 이은 신임 대외연락부장 류하이싱(62)은 전통 외교관 출신이지만, 그의 인선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안보 라인'에서의 경력이다. 파리 정치대학(IIAP)에서 행정학과 외교를 공부한 류하이싱은 외교부 유럽사장(국장)과 부장조리(차관보)를 거쳐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신설한 최고위 안보 의사 결정 기구인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의 부주임(차관급 실무책임자)으로 발탁됐다. 그는 시 주석의 핵심 측근인 차이치 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가 거쳐 갔던 NSC 실무를 담당하며 "충성심을 검증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며 중국 지도부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류하이싱의 임명은 중국의 대외 정책, 특히 당 채널을 통한 외교 활동이 이제 '국가 안보'라는 최상위 프레임 아래에서 더욱 엄격하게 통제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대외연락부는 외국의 정당, 싱크탱크, 학계와 관계를 맺으며 중국의 이익을 증진하는 핵심 당 기관이다. NSC 출신 인물이 이 부서를 이끌게 됨으로써 대외연락부의 활동은 외부 세력의 영향력 차단 및 내부 기밀 유지를 더욱 중시하는 안보 중심 시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연쇄 숙청으로 마비된 외교 시스템
류젠차오의 낙마는 시진핑 주석이 집권 3기(2022년 이후)에 벌인 광범위한 고위 엘리트 숙청의 최근 사례다. 외교부의 친강 전 부장 낙마 외에도 군부에서는 국방부장 리상푸, 로켓군 사령관 리유차오를 비롯한 주요 군 수뇌부가 부패 및 정치적 기율 위반 혐의로 해임되거나 조사받았다.
이 연쇄적 숙청에는 공통된 패턴이 존재한다. 첫째, 모든 숙청은 당국의 공식적인 해명 없이 불투명하게 진행됐다. 둘째, 제거된 인물들 대부분은 시진핑 주석이 직접 발탁하거나 총애했던 측근들이었다. 셋째, 이들은 임명된 지 불과 1~2년 만에 갑작스럽게 제거됐다.
이러한 현상은 시진핑 주석이 덩샤오핑 시대 이후 제도화됐던 집단 지도 체제와 예측 가능한 승계 절차를 약화시키고, 개인적인 충성심에 기반한 인치(人治) 중심으로 회귀했음을 의미한다. 개인주의적 통치 강화에도 불구하고 핵심 기관에서 연쇄적인 낙마가 발생한다는 것은 시진핑의 인선 시스템 자체가 조직 장악력이나 도덕적 결함을 충분히 걸러내지 못했거나, 충성심이 의심되는 순간 숙청을 통해 '절대적인 통제력'을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정치 행위임을 방증한다.
연이은 고위급 숙청 사태는 중국 외교 시스템 내부에 심각한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있다. 잦은 인사의 불확실성은 외교관들 사이에서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책 집행 시 정치적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마비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외교관들은 유능함이나 창의적인 정책 제시보다 중앙 지도부에 대한 안전한 복종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외교부장 공석 장기화 우려
류젠차오의 낙마로 외교부장 인선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심화됐다. 외교부장 자리는 전통적으로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으로 승진하는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양제츠와 왕이가 이 경로를 밟았다. 류젠차오는 이 승계 경로를 재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그의 제거로 인해 이미 정년(65세 또는 70세)을 넘긴 왕이 주임이 외교부장을 2년 이상 계속 겸직해야 하는 상황이 고착화됐다. 이는 시진핑 지도부가 외교 엘리트 내에서 왕이 주임의 뒤를 이어 중앙외사판공실과 외교부를 안정적으로 이끌 적임자를 찾는 데 극심한 난항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2년 연속 최고위 외교관이 아무런 설명 없이 사라지는 사태는 중국 외교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 복원 노력이 시급한 시점에서 핵심 인물의 갑작스러운 제거는 외교 파트너들에게 중국의 내부 권력 투쟁과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류젠차오 사건은 시진핑 주석이 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가 기능을 중앙 당의 통제하에 두고, 외부의 비판이나 내부의 자율성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 권력의 시대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이 같은 중앙집권적이고 불투명한 인선 방식을 통해 내부 통제를 강화할 수는 있겠지만, 외교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류젠차오 #시진핑 #중국외교 #대외연락부 #류하이싱 #국가안전위원회 #외교부장 #친강 #엘리트숙청 #왕이 #중앙외사판공실 #전랑외교 #안보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