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사정권과 중국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디지털 화폐 기반 결제 인프라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을 우회하면서도 미국 은행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글로벌 제재 체제에 중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댄 스위프트(Dan Swift)와 션 터넬(Sean Turnell)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양국 간 거래 편의를 넘어 정교한 '백도어(Backdoor)' 메커니즘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미얀마 국영은행들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 리스트에 올렸지만, 미얀마 군정은 붕괴하지 않고 중국과의 밀착을 통해 새로운 생존로를 모색하고 있다. 양국이 구축 중인 폐쇄형 디지털 원장(Digital Ledger) 시스템은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노출하는 스위프트와 달리 정보 흐름을 차단해 제재 감시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프트와 터넬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이중 구조로 설계됐다. 미얀마와 중국 간 거래는 양국이 통제하는 디지털 원장 내에서 암호화돼 이뤄지며, '세탁된' 자금은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 등에 위치한 제3의 법인을 통해 달러화로 변환돼 미국 은행으로 유입된다. 이 과정에서 자금 원천 정보는 디지털 단계에서 소멸되며, 미국 은행의 규제 준수 부서는 해당 거래를 일반 상거래로 인식하게 된다.

중국에게 미얀마는 에너지 수입의 전략적 약점인 '말라카 딜레마(Malacca Dilemma)'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 거점이다. 중국-미얀마 경제회랑(CMEC)은 윈난성에서 미얀마 짜욱퓨 항구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과 철도를 통해 인도양으로 직접 진출하는 루트를 제공하며, 이는 일대일로(BRI) 전략과 에너지 안보에 직결된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에게 디지털 위안화(e-CNY)와 국경 간 은행간 결제시스템(CIPS)의 효용성을 검증하는 실험대 역할을 한다. 만약 미얀마가 이 시스템을 통해 경제 붕괴를 막는다면, 이는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달러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 위안화 블록 형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기술의 북한 이전 가능성이다. 북한은 이미 암호화폐 해킹을 통해 디지털 자산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유하고 있으나, 현금화 과정에서 제재망에 걸려 동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이 미얀마에서 검증된 '국가 주도형 디지털 결제 및 세탁 인프라'를 북한에 제공한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위프트와 터넬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금 은행 메시지만 신뢰하는 기존 방식을 넘어 자금 원천이 되는 디지털 원장 데이터까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고객알기제도(KYC) 도입이 필요하며, 디지털 우회망의 접점이 되는 중개 기관 및 기술 제공 업체에 대한 강력한 세컨더리 보이콧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면서도 미국의 안보 동맹국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어 금융정보분석원(FIU)과 외교부의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북한이 미얀마 모델을 벤치마킹할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한 디지털 자산 이동 감시 체계 격상과, 아세안(ASEAN) 내 불법 금융 네트워크 확산 저지를 위한 국제 협력 주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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