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전례 없는 정책적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부터 전력망 확충, 핵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안이 이해관계자들의 상충하는 요구 사이에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1월 국무회의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거쳐 공개된 2035 NDC 안은 2018년 대비 53%에서 61%의 감축 범위를 제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기후부 장관은 "책임 있고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강조했으나, 이 절충안은 양측 모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환경단체와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근거로 61% 이상, 나아가 65% 수준의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사회 측은 정부가 상한선 61%를 제시한 것은 착시 효과를 노린 눈속임이며, 실제 정책 집행은 하한선 53%에 맞춰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53% 목표가 기후 정의에 부합하지 않으며 현재의 감축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는 위헌적 처사라고 규정했다.

반면 산업계는 정반대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8개 주요 업종별 협회는 공동 건의문을 통해 자체 분석한 최대 실현 가능 감축률이 48% 수준이라며, 정부안의 하한선조차 한국 제조업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기후부 산하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기술작업반이 검토했던 최강 시나리오가 48%였음에도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물리적 인프라의 한계에 부딪혔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정부는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건설하고, 2038년까지 태양광 74.8GW, 풍력 40.7GW 보급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박정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1차 전기본에 포함된 송·변전 설비 건설 사업 총 54건 중 무려 55%인 30건이 계획 대비 지연되거나 지연이 예상되는 상태다.

특히 동해안과 수도권을 잇는 초고압 직류송전(HVDC) 건설 사업이 주민 수용성 문제와 인허가 지연으로 수년째 답보 상태다. 이로 인해 동해안 발전소들은 가동률을 강제로 낮추는 발전 제약을 겪고 있으며, 연간 수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박정 의원은 "송전망 적기 확충 없이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목표도 공염불"이라고 지적했다.

송전망 확충의 주체인 한국전력공사의 재무 상태도 심각하다. 3분기 기준 한전은 9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으나, 누적 적자는 연결 기준 23.1조 원, 부채는 118.6조 원에 달한다. 하루 이자 비용만 73억 원이 지출되면서 미래를 위한 송전망 투자 여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하는 RE100 캠페인도 국내 산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거래처로부터 RE100 이행을 요구받을 경우 수출 제조사의 약 30%가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응답했다. 국내 재생에너지인증서(REC) 현물 거래 가격은 1MWh당 약 72,000원 수준이며, 태양광 발전 단가는 78~147달러로 중국(31~45달러)이나 미국(52~79달러)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정부는 원자력과 수소를 포함하는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를 국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회성 CF연합 회장은 미국, 일본, UAE, 국제에너지기구(IEA) 등과 글로벌 작업반을 구성했으며, 최근 미국의 청정에너지 구매자 연합(CEBA)까지 작업반에 합류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여전히 엄격한 RE100을 고수할 경우, 정부 주도의 CFE 인증이 민간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원전 확대 정책을 뒷받침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도 논란을 낳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 제36조 제6항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 설계수명 중 발생 예측량"으로 제한하고 있어, 설계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계속 운전 시 추가 폐기물을 저장할 공간을 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월성 2, 3, 4호기 등 노후 원전의 가동 중단이라는 논리적 귀결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부 내부 분위기도 악화되고 있다. 잦은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재난 대응 업무가 일상화되면서 장기적인 정책 수립을 위한 호흡이 끊어지고 있다. 올여름 폭우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장·차관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댐 방류 현장 점검과 대피소 방문으로 대체되었다.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책을 만드는 부처가 아니라 뒤처리를 하는 방재청이 된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기후부는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기후 악당' 오명을 벗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대규모 정부 대표단은 파리협정 10주년을 맞아 강화된 2035 NDC를 발표하고, CFE 이니셔티브의 국제적 확산을 주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NDC 수립의 난항과 산업계 반발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에 제시할 성과의 내용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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