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로 시소코 엠발로(Umaro Sissoco Embaló) 대통령이 2023년 12월 50주년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모습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 11월 26일 발생한 군사 쿠데타가 현직 대통령의 선거 패배를 무마하기 위한 '위장 쿠데타(Self-Coup)'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군부는 우마로 시소코 엠발로(Umaro Sissoco Embaló) 대통령을 구금하고 헌정 질서를 중단시켰으나, 야당 후보는 이를 재선 실패가 확실시되는 현직 대통령이 군부와 결탁해 벌인 정치적 연극이라고 주장했다.
사태는 11월 2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 직후 시작됐다. 엠발로 대통령 진영은 자체 집계를 근거로 1차 투표에서 65% 이상을 득표했다고 주장한 반면, 야당인 사회재생당(PRS) 소속 페르난두 디아스 다 코스타(Fernando Dias da Costa) 후보 측도 과반 득표를 확신하며 정권 교체를 선언했다. 선거관리위원회(CNE)가 27일 잠정 결과를 발표하기로 예정된 상황에서 양측 모두 패배를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26일 오후 비사우 시내에서 총성이 울려퍼지며 군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통령궁과 선거관리위원회, 내무부 청사 인근에서 중화기 및 자동소총 사격 소리가 들렸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주요 도로를 봉쇄했다. 오후 1시경 엠발로 대통령은 프랑스 매체 주네 아프리크(Jeune Afrique) 및 프랑스24(France 24)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군인들에게 체포됐다고 밝혔다.
군부는 국영 방송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 디니스 은차마(Dinis N'Tchama)는 "국가 안보 및 공공 질서 회복을 위한 고위 군사 사령부(High Military Command for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ecurity and Public Order)"가 전권을 장악했으며, 엠발로 대통령을 축출하고 모든 헌법 기관의 기능을 정지한다고 선언했다. 군부의 첫 번째 조치는 선거 절차의 즉각 중단이었다.
27일 군부는 국경 폐쇄와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한편, 엠발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오르타 인타-A(Horta Inta-A) 장군을 과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인타-A 장군은 엠발로 대통령이 임명한 전임 육군 참모총장이자 그의 충실한 동맹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난두 디아스 후보는 27일 온라인에 게시한 영상을 통해 자신이 군인들에게 체포됐다가 탈출했다고 밝히며, 엠발로 대통령의 체포와 쿠데타 선언이 모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표가 진행되면서 엠발로 대통령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이를 공식화할 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를 막기 위해 26일에 선제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디아스 후보는 쿠데타 이후 권력을 이양받은 인타-A 장군이 엠발로의 최측근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 사태가 적대적 쿠데타가 아닌 권력이 엠발로의 이너서클(Inner Circle) 안에서 수평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니비사우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2008년부터 '나르코 스테이트(Narco-State)'로 분류해온 국가다. 남미에서 생산된 코카인은 기니비사우의 비자고스 제도(Bijagós Archipelago)에 흩어진 88개의 섬을 경유해 유럽으로 밀반입된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에서 유입된 2.63톤의 코카인이 압수된 사례는 이 루트가 여전히 활발함을 보여준다. 마약 밀매 자금은 국가 예산을 상회하며, 군부와 정치 엘리트를 매수하고 선거 자금으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쿠데타는 러시아의 아프리카 영향력 확대라는 지정학적 맥락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엠발로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모스크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으며, 양국은 안보 협력과 자원 개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엠발로가 국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자 정권 생존을 위한 외부 보험으로 러시아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아프리카연합(AU)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포르투갈 등은 즉각 쿠데타를 규탄하고 엠발로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모든 정치 세력의 자제"를 촉구하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기니비사우는 1974년 독립 이후 9번의 쿠데타와 수많은 시도를 경험한 나라로, 군부는 정치의 최종 심판자로 군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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