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2시 51분(현지시간), 홍콩 신계(New Territories) 타이포(Tai Po) 지구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36명이 숨지고 279명이 실종됐다. 30층 높이 고층 아파트 8개 동 중 7개 동을 집어삼킨 이번 참사는 홍콩 현대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주거 시설 재난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홍콩 소방처(Fire Services Department)는 2008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 등급인 5급(No. 5 Alarm) 경보를 발령하고 총 128대의 소방차, 57대의 구급차, 소방관 888명, 경찰 400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는 웡 청 하우스(Wang Cheong House) 저층부 외벽에서 시작돼 건물을 감싼 대나무 비계(Bamboo Scaffolding)와 녹색 나일론 안전망을 타고 순식간에 상층부로 번졌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대는 신고 접수 4분 만인 오후 2시 55분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불길은 맹렬하게 치솟고 있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화재 확산을 부채질했고, 오후 3시 2분 3급 경보, 오후 3시 34분 4급 경보를 거쳐 오후 6시 22분 최고 등급인 5급 경보가 발령됐다. 건물 외벽과 비계 사이 좁은 공간이 굴뚝 효과(Chimney Effect)를 일으켜 불길을 위로 빨아올렸으며, 보수 공사용으로 적재된 스티로폼(Styrofoam) 단열재가 유독 가스를 내뿜으며 화재를 가속화했다.
이번 화재로 샤틴 소방서 소속 9년 차 소방관 호 와이호(Ho Wai-ho, 37세)가 구조 작업 중 순직했다. 그는 건물 내부 진입 후 30분간 연락이 두절됐다가 동료들에 의해 발견됐으나 끝내 숨졌다. 앤디 영(Andy Yeung) 소방처장은 "용감하고 헌신적인 동료"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279명에 달하는 대규모 실종자 발생은 이번 참사의 심각성을 더한다. 웡 푹 코트는 1983년 입주한 노후 단지로 거주민 상당수가 고령층이다. 전문가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화재 초기 신속히 대피하지 못하고 자택에 고립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화재로 건물 내 전기와 통신 설비가 마비되면서 고립 주민들이 외부와 연락할 수단을 잃었고, 31층 높이 건물에서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계단실이 연기로 가득 차면서 상층부 주민들은 사실상 탈출구를 잃었다.
보안국장 크리스 탕(Chris Tang)은 "현장의 방수포와 그물망이 규정된 자재보다 훨씬 빠르게 연소되는 비정상적인 특징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시공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내화성(Fire Retardant)이 떨어지는 저급 자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내화성 안전망은 일반 안전망보다 약 2배 비싸다.
이번 보수 공사를 맡은 시공사는 웡 입 건설 엔지니어링(Wang Yip Construction Engineering Ltd., 宏業建築工程有限公司)으로 확인됐다. 2024년 1월 입주자대표회의는 3억 3천만 홍콩달러(약 580억 원) 규모의 공사비를 승인했고, 공기 단축과 비용 효율성을 위해 8개 동 전체를 동시에 비계로 감싸는 공사를 진행했다. 주민들은 "한 번에 한 동씩 공사했다면 단지 전체로 번지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해왔다. 화재 발생 직후 시공사 측은 언론 취재 요청에 전화를 끊거나 응답하지 않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화재 발생 당일 늦은 밤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노력을 다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 홍콩의 개별 사건에 대해 국가 주석이 이처럼 신속하게 구체적 지시를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존 리(John Lee) 행정장관은 사고 현장과 병원을 방문하며 사태 수습을 직접 지휘하고 있으며, 경찰과 소방처 산하에 전담 수사팀을 발족해 화재 원인과 형사 책임 여부를 수사 중이다. 12월 7일 예정된 선거와 관련된 모든 선거 운동이 잠정 중단됐으며, 정부는 선거 연기 필요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주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사고 직후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고 홍콩 정부 및 병원 당국과 핫라인을 구축했다. 27일 기준 공식 확인된 한국인 사상자는 없으나, 실종자 279명 명단에 한국인 포함 여부를 확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타이포 지역은 홍콩 중문대학교(CUHK) 등 대학과 인접해 있어 유학생이나 교직원의 거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홍콩의 대나무 비계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가 논의될 만큼 독특한 전통 기술이지만, 이번 화재는 경제성과 안전성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치러야 할 대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홍콩 정부는 2024년 3월부터 공공 공사에서 대나무 비계를 금속 비계로 단계적 전환을 발표했으나, 민간 부문이나 이미 계약된 공사에는 강제성이 부족했다. 이번 사건은 이러한 과도기적 규제 공백 속에서 발생했다.
약 900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해 웡 푹 커뮤니티 홀과 인근 학교 강당 등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7개 동의 외벽과 내부 세대 다수가 전소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돼 화재 진압 후에도 상당 기간 재입주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이는 홍콩의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문제와 맞물려 심각한 사회적 후유증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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