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장기간 표류해 온 차기 잠수함 도입 사업 '오르카(Orka)' 프로그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스웨덴 사브(Saab)를 선정했다. 블라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슈(Władysław Kosiniak-Kamysz)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11월 26일 스웨덴의 A26 블레킹에(Blekinge)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업 규모는 약 23억 6천만 유로(한화 약 3조 4천억 원)에서 유지보수 포함 시 최대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계약 체결은 2026년 2분기, 첫 번째 함정 인도는 203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폴란드는 그동안 한국의 한화오션, 독일의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 프랑스의 나발 그룹(Naval Group) 등 세계 주요 방산 기업들과 치열한 협상을 벌여왔다.
한국 방산 업계는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의 대규모 수출 성공을 발판으로 잠수함 사업 수주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최종 탈락했다. 한화오션은 KSS-III Batch-II(장보고-III 배치-II)를 제안하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운용이 가능한 수직발사관(VLS) 탑재, 계약 후 6년 이내 초도함 인도, 퇴역 예정 장보고급 무상 대여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사브의 승리를 견인한 핵심 요인은 '발트해 최적화'였다. 발트해는 평균 수심이 약 55m에 불과한 천해(淺海) 환경으로, 대형 대양형 잠수함보다 중소형 잠수함이 작전상 유리하다. A26은 수중 배수량 약 2,000톤급, 전장 66m로 한화오션의 3,600톤급, 89m에 비해 소형이다. 사브 미카엘 요한슨 최고경영자(CEO)는 "A26은 발트해의 얕은 수심에 자연스럽게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A26은 '고스트(GHOST, Genuine HOlistic STealth)' 기술을 적용해 소음, 자기장, 유체 역학적 파장 등 모든 신호를 최소화했으며, 함수에 위치한 '다목적 포털(Multi-Mission Portal)'을 통해 특수부대 요원, 무인 수중정(UUV), 소형 잠수정 등을 수중에서 은밀하게 발진하고 회수할 수 있다. 스웨덴의 스털링(Stirling) 공기불요추진체계(AIP)는 수중 체류 시간을 최대 18일까지 늘려 디젤-전기 잠수함의 은밀성을 극대화한다.
이번 선정에는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영국 총리는 스웨덴 울프 크리스테르손(Ulf Kristersson) 총리와 공동 서한을 작성해 사브의 입찰을 지지했으며, 영국 방산기업 밥콕(Babcock)의 참여를 공식화했다. 밥콕은 이미 폴란드의 차기 호위함 사업인 '미에추니크(Miecznik)' 프로그램의 파트너로서 폴란드 국영 방산그룹 PGZ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 업체 탈락의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유럽연합(EU) 자금 활용 문제였다. 폴란드 정부는 오르카 프로그램의 재원으로 EU의 안보 지원 기금인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등을 활용할 계획이며, EU 공동 자금을 사용해 비유럽권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정치적·절차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폴란드 해군은 현재 1980년대 중반 취역한 소련제 킬로(Kilo)급 '오르제우(ORP Orzeł)'함 단 한 척만 보유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잦은 고장으로 작전 운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과거 노르웨이에서 도입한 코벤(Kobben)급 잠수함 4척도 2021년 전량 퇴역했다. 2030년까지의 전력 공백기 대응을 위해 스웨덴 해군이 운용 중인 구형 잠수함 리스나 승조원의 스웨덴 파견 훈련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사브는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PGZ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잠수함의 유지·보수·정비(MRO) 능력을 폴란드 조선소에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전시 상황에서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잠수함을 수리하고 운용할 수 있는 '폴란드화(Polonization)' 정책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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