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우 코로르 전경/구글 이미지


인구 1만8천여 명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Palau)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2열도선 남단에 위치한 팔라우는 괌과 사이판을 방어하는 전진기지이자 중국의 해양 세력을 견제하는 최전선으로,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 올해 한국과 수교 30주년을 맞은 팔라우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기후 위기 대응과 해양 과학 기술 협력이라는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 있다.

미국, 20년간 1조2천억 원 투입…안보 동맹 공고화

미국은 지난해 팔라우와 자유연합협정(COFA)을 갱신하며 향후 20년간 총 8억8천900만 달러(약 1조2천억 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팔라우 연간 정부 예산을 상회하는 규모로, 교육·보건·인프라 구축·기후 변화 적응 등 국가 시스템 전반의 현대화를 목표로 한다. 협정에는 원조 종료 후에도 경제적 자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탁 기금 조성도 포함됐다.

미국이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는 핵심 이유는 '전략적 거부' 권한 때문이다. COFA에 따라 미국은 제3국 군대가 팔라우의 영토·영해·영공에 진입하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방어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는 중국 해군이 제1열도선을 뚫고 괌이나 하와이로 향하는 길목을 팔라우가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미국의 1, 2 도련선 상 위치/외교신문


초수평선 레이더 배치…서태평양 감시망 구축

미국은 팔라우의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전술 다목적 초수평선 레이더(TACMOR)' 시스템을 배치하고 있다. 이 레이더는 지구 곡률 때문에 일반 레이더가 탐지하지 못하는 수평선 너머의 원거리 표적을 전리층 반사를 이용해 탐지하는 첨단 시스템이다.

송신소는 최대 섬 바벨다옵(Babeldaob) 북부 가라르드(Ngaraard) 주에, 수신소는 약 60마일 떨어진 앙가우르(Angaur) 섬에 각각 건설된다. 2026년 가동을 시작하면 중국 본토 연안에서 남중국해, 필리핀해에 이르는 광활한 공역과 해역의 항공기 및 함정 이동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게 된다.

레이더 기지 건설은 지역 사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앙가우르 주민들은 환경 영향 평가 미이행과 인프라 훼손을 문제 삼으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팔라우 대법원은 '주권 면제'와 정부 재량권을 근거로 소송을 기각했다. 미국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펠렐리우(Peleliu) 비행장을 재정비해 KC-130 수송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말라칼(Malakal) 항만도 대형 선박 접안이 가능하도록 확장하고 있다.

중국, 관광·부동산 무기로 '회색지대 전술' 구사

중국은 자본과 인력을 앞세운 회색지대 전술로 팔라우 내부를 파고들고 있다. 관광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팔라우의 취약점을 노린 것이다. 2015년 중국인 관광객은 약 9만 명으로 전체 방문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나, 팔라우가 대만과의 단교 요구를 거부하자 2017년 11월 중국 정부는 여행사들에게 팔라우 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팔라우의 호텔과 식당, 투어 업체들이 도산 위기에 몰렸고 '팔라우 퍼시픽 항공'은 운항을 중단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인 방문객은 1만6천757명으로 전체 1위를 차지하며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자본은 관광객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팔라우 토지를 대규모로 임대했다. 외국인 토지 소유가 금지된 법을 우회해 현지인을 내세우거나 99년 장기 임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토지를 확보했다. 문제는 미군 훈련장 인근이나 레이더 기지 건설 지역 등 안보상 민감한 위치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마카오 최대 폭력 조직 '14K 삼합회'의 두목 완 쿠옥 코이(Wan Kuok Koi)는 팔라우에 '팔라우 중국 홍문 문화 협회'를 설립했다. 미국 재무부는 이 단체가 범죄 조직의 위장 단체이며 팔라우 엘리트층에 대한 뇌물 공여, 불법 도박, 자금 세탁 등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고 지적하며 제재 명단에 올렸다.

수랑겔 휩스 주니어(Surangel Whipps Jr.) 대통령/위키피디아 이미지


친미·친대만 휩스 대통령 재선…중국 개입 실패

지난해 11월 팔라우 대선은 미·중 대리전의 정점이었다. 수랑겔 휩스 주니어(Surangel Whipps Jr.)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중국이 대만과 단교하면 호텔 방을 꽉 채워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중국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휩스 대통령을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는 인지전을 펼쳤다.

그러나 휩스 대통령은 5천626표(57.74%)를 얻어 4천103표(42.11%)에 그친 토미 레멘게사우(Tommy Remengesau) 전 대통령을 큰 표차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는 팔라우 국민들이 중국의 경제적 유혹보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과 주권 수호를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였다.

대만, 생활 밀착형 원조로 차별화

전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대만에게 팔라우는 태평양 지역의 외교적 교두보이자 상징적인 동맹국이다. 대만은 거대 인프라 건설보다 팔라우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원조에 집중한다.

대만은 신콩 병원(Shin Kong Hospital) 등 자국 병원과 연계해 중증 환자들을 대만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만 기술단은 팔라우의 척박한 환경에 맞는 농법을 전수하고, 양돈·양계·수산 양식 기술을 지원해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거창한 고속도로 대신 마을 단위의 도로 포장, 태양광 가로등 설치, 학교 시설 보수 등 소규모 인프라 개선 사업도 매년 꾸준히 지원한다.

지난해 대선에서 휩스 대통령이 재선되자 라이칭더(賴清德) 대만 총통은 즉각 축전을 보내며 양국의 결속을 과시했다. 올해 대만인 관광객 수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1만316명) 경제적으로도 팔라우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강제 징용 역사 딛고 '블루 이코노미' 파트너로

올해 한국과 팔라우는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양국 관계는 1995년 공식 수교 이전, 제국주의 폭력 속에 얽힌 아픈 역사에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팔라우는 일본의 남양군도 위임통치령 중심지였으며,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희생됐다.

1940년대 일제는 비료 원료인 인산광석을 채굴하기 위해 앙가우르 섬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대거 투입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졌다. 앙가우르 섬 서쪽 해안에는 당시 희생된 한국인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

미·일 양군 합쳐 2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펠렐리우 전투 현장에도 조선인들이 '군속'으로 끌려왔다. 당시 굶주림과 공포 속에 죽어가던 조선인들이 내뱉은 "아이고, 아이고"라는 탄식은 현지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이로 인해 코로르와 메영스를 연결하는 다리가 한때 현지인들 사이에서 '아이고 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가장 큰 섬인 바벨다옵에 위치한 평화기념공원에도 한국인 희생자 추념비가 건립돼 있다.

컴팩트 로드 모습/one-million-places.com 이미지


정글 속의 투혼: 팔라우의 지도를 바꾼 컴팩트 로드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에 한국인의 땀으로 닦은 길이 있다. 이름은 '컴팩트 로드(Compact Road)'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총 길이는 85km다. 팔라우 최대 섬인 바벨다오브를 관통하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이 공사는 단순한 도로 건설이 아니었다. 극한의 환경과 기업의 운명을 건 사투였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발주처는 미국 육군 공병대였다. 미국이 팔라우의 독립을 지원하며 체결한 자유연합협정에 따라 자금을 댔다. 감독관인 미군 공병대는 철저했다. 시방서(Specification) 준수를 깐깐하게 요구했다. 그들은 타협을 몰랐다. 흙의 수분 함유량을 1% 단위까지 체크했다. 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작업은 즉시 중단됐다.

하늘도 도와주지 않았다. 팔라우는 열대 우림 기후다. 연강수량이 4,000mm에 달한다. 1년 중 200일 이상 비가 쏟아진다. 땅은 마를 새가 없었다. 비가 오면 지반은 순식간에 곤죽으로 변했다. 거대한 중장비가 진흙 구덩이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흙을 다시 말리고 다지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됐다.

가장 큰 위기는 내부에서 터졌다. 공사가 한창이던 1999년이었다. 본국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됐다. 대우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본사의 자금 지원이 사실상 끊겼다. 현장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모두가 공사 중단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장 직원들은 철수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 건설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버텼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공사를 강행했다.

2007년 10월 1일, 마침내 도로가 완공됐다. 첫 삽을 뜬 지 약 10년 만의 결실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정글이 열렸다. 섬의 남북이 하나로 이어졌다. 팔라우 정부는 이 도로를 기반으로 수도를 멜레케옥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물류가 돌고 경제가 살아났다. 대우건설은 이 프로젝트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대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신뢰'를 얻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군이 발주한 공사를 끝까지 완수해낸 한국 기업의 뚝심. 그것은 지금도 팔라우의 밀림을 가로지르는 85km의 아스팔트 위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팔라우 추적소/항우연 홈페이지 자료


한국항우연 위성추적소, 우주 협력의 상징

30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는 과거의 추모를 넘어 미래의 번영을 위한 협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은 2012년부터 해외추적소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에 착수해 2014년 팔라우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2016년 팔라우 정부 사업허가를 받아 현지 토목공사와 장비 설치를 진행한 끝에 2019년 11월 7일 팔라우 추적소 문을 열었다.

팔라우 추적소는 약 2만8천㎡ 부지에 지름 7.3m급 대형 원격자료수신 안테나와 위성통신망을 갖추고 있다. 나로우주센터에서 약 1천700km 떨어진 이곳에서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 발사 시 3단 엔진 연소구간에 대한 비행 정보 획득과 위성 분리 신호를 수신할 수 있다. 과거 나로호 발사 당시에는 해경 선박에 이동형 원격자료수신 장비를 싣고 필리핀 인근 해역까지 출항해야 했으며, 해상 날씨 및 해상 체류 가능 기간의 제한 등으로 발사 운용상 많은 제약이 있었다.

팔라우 추적소 구축으로 우주발사체 발사 시 나로우주센터와 제주추적소, 팔라우 추적소를 연계해 발사 전 구간에 대한 발사체의 비행 위치와 비행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수신할 수 있게 됐다. 정식 법인명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팔라우 추적소(Korea Aerospace Research Institute Palau Tracking Station)'이며, 유지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동형 장비로 제작해 발사 임무 시에만 운용하고 이후 장비를 국내로 철수해 관리하고 있다.

팔라우 코로르 석양/구글 이미지


해양 과학 기술로 기후 위기 공동 대응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은 팔라우 국제산호초센터(PICRC)와 손잡고 해양 산성화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KIOST는 팔라우 연안에 관측 부이를 설치해 수온, pH 농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며 기후 변화가 산호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고 있다. 미크로네시아 축(Chuuk)의 한·태평양 해양연구센터(KSORC)와 연계해 팔라우를 한국 해양 과학의 태평양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ODA 방향을 단순 물자 지원에서 '기후 회복력 강화'로 전환했다. 태평양 도서국 포럼(PIF) 협력 기금을 통해 팔라우를 포함한 도서국들에 기후 예측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협력해 팔라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후 적응 역량 강화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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