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북한 러시아 특명전권대사 고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마체고라(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보도영상 캡춰
주북한 러시아 특명전권대사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마체고라(Aleksandr Ivanovich Matsegora)가 지난 6일 평양에서 향년 70세로 급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8일 공식 성명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러시아와 북한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수립과 심화에 크게 기여한 뛰어난 외교관이자 애국자"라고 추모했다.
마체고라 대사는 지난 2일 모스크바에서 한국어 전공 러시아 대학생들과 만나 특강을 진행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사망이 예기치 못한 급성 질환이나 사고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와 북한 양측 모두 구체적인 사인을 밝히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사망"이라고만 표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보낸 조전에서 "그의 노력 덕분에 쿠르스크 지역을 침략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전에 북한 군사 파견대가 참여하는 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북한 정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그 공로를 특정인에게 귀속시킨 최초의 사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신속하게 조전을 보내 "가까운 친구이자 동지"라고 칭하며 "조러(북러) 관계 발전이 중대한 역사적 국면에 들어선 시기"에 대사를 잃은 것이 "비통한 일"이라고 애도했다. 조선중앙통신(KCNA)이 보도한 이 조전에서 김정은이 외교관에게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55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오데사(Odesa)에서 태어난 마체고라는 1978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교(MGIMO) 국제경제관계학부를 졸업한 뒤 평생을 한반도 문제에 천착한 '코리안 스쿨' 외교관이었다. 그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주북한 러시아 대사관 1등 서기관과 부산 주재 총영사관 영사 자문관을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 2011년까지는 공사참사관으로 근무하며 김정일 시대 말기의 권력 승계 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2014년 12월부터 11년간 주북 대사직을 수행한 마체고라는 지난해 6월 체결된 '러-북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의 핵심 설계자이자 실행자로 평가받는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교수는 그를 "러시아 제국, 소련, 러시아 연방을 통틀어 한반도 최고의 대사"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마체고라는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국경 봉쇄 기간 동안 대부분의 외교관들이 평양을 떠날 때도 끝까지 잔류하며 북한 지도부의 신뢰를 얻었다. 당시 그는 인터팩스(Interfax)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양 생활을 "현대판 서바이버 게임"에 비유하며 "난방도, 온수도, 마취제도 없는 병원으로 실려가는 악몽을 꾼다"고 토로한 바 있다.
마체고라의 사망으로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당분간 블라디미르 토페하(Vladimir Topeha) 공사참사관이 임시 대리대사 자격으로 이끌게 된다. 차기 대사 후보로는 현 러시아 외무부 제1아주국장인 이반 젤로호프체프(Ivan Zhelokhovtsev)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통일부는 김정은의 조전이 "이례적"이라고 평가하며, 마체고라의 사망이 양국 군사 협력의 실무적 지연을 초래할 가능성은 있으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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