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발언중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보도영상 캡춰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독도 영유권을 재차 주장하고 대만 유사시 일본의 '존립위기사태' 인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동북아시아 외교 안보 지형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이번 발언은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악화시키며 역내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독도(일본명 다케시마)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나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의 대만 무력 침공이 발생할 경우 이를 일본의 '존립위기사태'로 인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존립위기사태는 2015년 안보법제에 따라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밀접한 관계국이 공격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다.
한국 외교부는 즉각 히로타카 마쓰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를 "식민지배 역사의 부정"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의 "대만은 중국의 영토"라는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이번 발언은 다카이치 총리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4년 중의원 선거와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연이은 패배로 자민당의 단독 과반 의석이 붕괴됐다. 중도 성향의 공명당이 연립에서 이탈하면서 다카이치 정권은 일본유신회(Ishin)나 국민민주당과 같은 우파 야당과의 '사안별 협력'에 의존하는 소수 여당 체제로 전락했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 보수층 지지를 결집해야 하는 다카이치 총리는 대외 강경책을 국내 정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월 여론조사에서 69.9%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이러한 강경 노선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은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인 보복에 나섰다. 11월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 완화로 잠시 재개됐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12월 1일부터는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중희토류에 대해 외국 제조사가 중국 측 지분을 50% 미만으로 유지해야만 수출을 허가하는 새로운 통제 조치를 발효시켰다. 이는 일본의 전기차 및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직접 위협하는 조치다.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발언 직전 주말인 12월 6일과 7일 오키나와 남동쪽 공해상에서 중국 해군 항공모함 랴오닝(Liaoning)함에서 발진한 J-15 전투기들이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를 향해 두 차례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준했다. 화기관제 레이더 조준은 미사일 발사 직전 단계의 적대 행위로 간주돼 우발적 충돌 위험을 극도로 높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지도자의 잘못된 언행으로 인해 회담 개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내년 1월로 추진되던 한·중·일 정상회담의 개최를 공식 거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졌다. 올해 6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후 당선된 이 대통령은 10월 APEC 정상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45분간 회담하며 "우려가 사라졌다"고 평가할 정도로 실용주의 노선을 펼쳐왔다. 내년 1월 중순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奈良)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기로 원칙적 합의도 이뤘다.
그러나 이번 독도 발언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12월 초 69.4%에서 54.9%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진보 지지층의 실망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진보 진영 일각과 반일 시민단체들은 나라 방문 계획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중일 갈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는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갈등을 고조시킬 뿐"이라며 한국이 중일 간 긴장을 완화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역사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안보 및 경제 협력은 유지하겠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태도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와의 통화에서 "중국과의 긴장 고조를 피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대만 문제의 불필요한 점화를 원치 않는다는 트럼프의 거래적 관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내년 1월 나라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향후 한일 관계와 동북아 정세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연말연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거나 독도 문제에 대해 추가 강경 발언을 할 경우 이 대통령이 방일을 강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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