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 다우드(Kamel Daoud)/페이스북 캡춰
2024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수상한 프랑스-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Kamel Daoud)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도화된 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과 증언을 통해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잊지 말고,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라며 "가장 끔찍한 죽음은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방한은 알제리 내전(1992-2002)을 다룬 소설 『후리(Houris)』가 본국에서 출판 금지되고 작가 본인과 아내가 고소당한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
연세대학교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12월 1일부터 11일까지 개최한 '2025 연세노벨위크(Yonsei Nobel Week)'에 초청된 다우드는 4일 "기억은 여행인가 감옥인가?(Is Memory a Journey or a Prison?)"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알제리와 한국이 식민 지배, 내전, 군부 독재,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국가폭력의 역사가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고 '고통 이후에, 죽음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고 삶은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가져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설 『후리』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목이 베였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여성 오브(Aube, '새벽'이라는 뜻)의 독백으로 구성됐다. 성대를 다쳐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캐뉼라(cannula, 삽관)라는 의료 기구를 통해서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제목 '후리'는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 천국에 간 남성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검은 눈의 처녀들을 의미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내전 당시 이슬람주의자들이 저지른 학살과 강간이 종교적 보상 심리와 뒤틀린 성적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고발한다.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영예를 안았지만, 알제리에서는 출판이 전면 금지됐다. 알제리 당국은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의 알제리 국제도서전 참가를 불허했다. 이는 소설이 2005년 국민투표로 채택되고 2006년 대통령령으로 시행된 '평화와 국민화해를 위한 헌장(Charter for Peace and National Reconciliation)' 제46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발언, 저술, 기타 어떠한 행위로든 '국가적 비극(내전)'의 상처를 이용하거나 도구화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위반 시 징역 3년에서 5년 및 벌금 25만에서 50만 디나르(약 250만~500만 원)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알제리 내전의 실제 생존자인 사아다 아르반(Saâda Arbane)이 다우드와 그의 아내를 고소한 사건이다. 아르반은 내전 당시 일가족이 학살당하고 자신은 목이 베여 목소리를 잃은 생존자로, 소설의 주인공 오브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도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2016년부터 다우드의 아내인 정신과 의사 아이샤 데두(Aicha Dehdouh)에게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을 털어놓았는데, 치료 과정에서 발설한 내밀한 이야기들이 남편인 작가에게 전달돼 소설의 소재로 무단 사용됐다며 프랑스 법원에 20만 유로(약 3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갈리마르 대표 앙투안 갈리마르는 "소설은 내전의 비극적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플롯과 캐릭터, 주인공은 순수하게 허구적"이라고 반박하며, 이 소송이 "알제리 정권과 가까운 매체들에 의해 조직된 폭력적이고 명예훼손적인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제리 법원은 다우드와 그의 아내에 대해 국제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드는 "망자들은 우리에게 자신을 닮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망자들이 살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덧붙이며,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과거를 기억하는 '능동적 애도'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의 서울 발언은 자국 내에서는 발설할 수 없는 금기어들을 전 세계를 향해 송출한 것으로, 사실상의 '망명 작가 선언'과 다름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멜 다우드(Kamel Daoud)/사진: F. Mantovani © Éditions Gallimard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 위원회는 제46조에 따른 징역형이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제재로서 강제 노동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제105호)' 위반 소지가 있음을 경고했다.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도 2018년 최종 견해에서 알제리 정부에 제46조 폐지를 권고하며,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권 침해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 수단에 접근할 권리를 박탈한다"고 명시했다.
1970년 알제리 모스타가넴에서 태어난 다우드는 젊은 시절 한때 이슬람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나 이후 전향해 가장 강력한 이슬람주의 비판가이자 세속주의 옹호자가 됐다. 그는 2013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아랍인의 관점에서 다시 쓴 소설 『뫼르소, 살인 사건(Meursault, contre-enquête)』으로 공쿠르 신인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다우드 사태와 맞물려 또 다른 저명한 프랑스-알제리 작가 부알렘 상살(Boualem Sansal)이 2024년 말 알제리 공항에서 체포돼 구속된 사건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다우드는 인터뷰에서 "부알렘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프랑스에 보내는 메시지다. '우리는 그를 체포할 수 있고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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