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대한민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심각한 헌정 위기를 맞았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단 6시간 만에 국회의 해제 결의로 무력화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한 충격파는 한국의 정치, 경제, 외교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12.3 사태 1주년을 맞아,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준 회복력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되고 있는 외교 안보 기조의 대전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이 총칼을 이긴 6시간
그날 밤 계엄군은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이라는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가 국민의 대표기관을 무력으로 점거하려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회로 집결했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12월 4일 오전 1시 2분, 여야를 막론한 190명의 의원이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했다. 헌법 제77조 5항이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의 힘이었다. 군부의 물리력 앞에서도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시민 사회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헌정을 복원했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증명한다. 과거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초연결성은 군의 정보 통제를 무력화했고, 모든 병력 이동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은밀한 작전 수행은 불가능했다.
탄핵에서 조기 대선까지, 제도는 계속 작동했다
12월 14일 국회는 재석 300명 중 찬성 204표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비윤계 의원들의 이탈표가 결정적이었다. 이는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헌정 파괴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은 이를 형법 제87조 '내란' 혐의로 규정했고, 1월 15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직무 정지 중 체포되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피청구인의 행위는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이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라는 결정문은 명확했다. 6월 3일 조기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은 격동의 6개월을 헌법과 법치의 틀 안에서 마무리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도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엄 선포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국회는 소집되었고, 탄핵은 투표로 결정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법리에 따라 판단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회복력(resilience)이다.
경제는 V자 반등, 그러나 갈등은 여전히
경제적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계엄 사태 직후 원/달러 환율은 1,444원까지 치솟았고, KOSPI 지수는 2,300선까지 곤두박질쳤다. 1분기 민간 소비는 -0.1%, GDP 성장률은 -0.2%를 기록하며 역성장에 빠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제도적 불안정성'을 우려하며 자금을 회수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강력한 경기 부양책이 시행되면서 경제는 빠르게 반등했다. 정부는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전 국민에게 소비쿠폰을 지급했고, 글로벌 AI 붐에 힘입은 반도체 수출 급증으로 3분기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3%를 기록했다. IMF와 한국은행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정치적 갈등은 여전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암세포를 도려내는 수술"이라며 내란 가담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강조하자, 보수층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1주년을 맞아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는 친윤과 반윤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12.3을 '국민 주권의 날'로 기념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과잉'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사회의 깊은 균열을 드러낸다.
트럼프 2.0 시대, 실리 외교로 돌파하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이재명 정부는 전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3각 공조를 통한 대중 견제에 올인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미중 갈등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10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무역 흑자국에 10~20%의 보편 관세 부과를 위협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과감한 카드를 꺼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해 1,500억 달러(약 200조 원)를 투자하는 대신, 한국산 자동차와 철강에 대한 추가 관세를 면제받고 기존 한미 FTA 세율을 적용받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는 안보(미 해군력 증강 지원)와 경제(관세 방어)를 교환한 전형적인 실리 외교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적(transactional) 외교 스타일을 정확히 읽고 대응한 결과였다. 윤석열 정부 시절 한국이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북아 중재자론, 가능한가
더욱 주목할 만한 변화는 동북아 외교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만 해협을 둘러싼 중일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갈등을 고조시킬 뿐"이라며 명확한 중립 기조를 천명했다. 그는 외신 기자회견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한국 속담을 인용하며, 서울을 베이징과 도쿄 사이의 대화 채널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동맹의 하위 파트너'에서 '지역 내 안정자(stabilizer)'로 격상시키려는 시도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할 것이고, 중국은 한미동맹이라는 구조적 제약을 의식할 것이다. 일본 역시 한국의 중재 역할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냉전 시대처럼 진영 논리로 동북아를 재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자신의 국익에 기반한 독자적 외교 공간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이재명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는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경제와 안보 협력은 지속하는 실용주의를 보이고 있다.
12.3이 남긴 것들
12.3 사태 1주년을 맞아 우리가 확인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 민주주의는 극한 상황에서도 작동한다는 것. 둘째, 위기는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와 외교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과제도 분명하다. 내부적으로는 '내란 청산'을 둘러싼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암세포 도려내기' 수사는 정의 실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AI 반도체 등 특정 산업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외교적으로는 '중재자론'이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실제로 얼마나 자율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조선업 빅딜'은 단기적 성과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 더 깊이 편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2.3은 끝났지만, 12.3이 제기한 질문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은 과연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외교적으로는 강대국 정치의 종속 변수가 아닌 독립 변수로 기능할 수 있을까. 1년이라는 시간은 이 질문들에 답하기에는 너무 짧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12.3 이후의 대한민국을 지켜보는 인내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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