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사령탑이 32년 만에 교체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을 환경부와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가 공식 출범하면서다. '산업 지원'에서 '기후 위기 대응'으로 국가 에너지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맞이한 가운데, 한국의 해상풍력 산업은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밖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대만과 유럽 등지에서 조 단위 수주 잭팟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새 부처의 규제 강화 움직임과 행정 절차 지연으로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기후부 출범 이후 한국 해상풍력 시장의 현주소와 거버넌스 개편이 산업계에 미친 파장을 살펴봤다.
◆ 거버넌스 리스크 해소인가, 또 다른 규제인가?
기후부의 출범은 에너지와 환경 정책의 일원화라는 명분 아래 단행되었으나, 산업 현장에서는 '엇박자'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핵심은 해상풍력 산업을 바라보는 두 부처의 시각차다. 발전소 인허가와 내수 보급을 담당하는 기후부는 '환경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반면, 기자재 수출과 제조 육성을 맡은 산업통상부(이하 산업부)는 '산업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력공사와 산하 발전 자회사가 산업부에서 기후부로 이관되면서, 전력 시장의 운영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및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산업과 에너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기능 분리에 대해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 경쟁력이 더 악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수출 지원은 산업부가 독려하는데, 정작 국내 트랙 레코드(Track Record·실적)를 쌓아야 할 내수 시장은 기후부의 환경 규제 강화로 막혀버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후부는 출범 직후 환경영향평가 권한과 발전사업 허가권을 쥐고 입지 선정 기준을 대폭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원스톱 샵'을 통한 신속 처리를 기대했던 민간 사업자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 기후부 장관의 첫 시험대, '반쪽짜리' 풍력 입찰
시장의 우려는 지난 11월 17일 기후부가 발표한 '2025년 하반기 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 공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성환 장관이 이끄는 기후부는 이번 입찰에서 육상풍력 230메가와트(MW) 내외만 공고하고, 업계가 고대하던 해상풍력 물량은 전격 제외했다.
기후부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해상풍력은 인허가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가 예상되는 사업을 대상으로 소관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별도 입찰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기후부가 주도하는 '속도 조절'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 산업부 주도 시절에는 보급 목표 달성을 위해 다소 유연하게 적용되던 인허가 기준이, 환경 규제 기능을 통합한 기후부 체제에서는 '선(先) 규제 해결, 후(後) 입찰' 원칙으로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2030년까지 해상풍력 14.3기가와트(GW)를 보급하겠다는 국가 목표 달성에 적신호를 켰다. 입찰이 지연될수록 착공과 준공도 늦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국내 공급망 기업들의 일감 절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내수가 안 되면 밖으로"… 수출로 버티는 K-풍력
내수 시장이 행정 절차로 주춤하는 사이, 한국 풍력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찾으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2025년 하반기,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SK오션플랜트는 지난 8월 대만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약 2,832억 원 규모의 하부구조물(재킷)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 대규모 수주로, SK오션플랜트의 수주 잔고는 1조 5,622억 원까지 치솟았다. 대만 시장에서의 독보적인 지배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한화오션 역시 지난 10월, 대형 해상풍력발전기 설치선(WTIV)을 당초 일정보다 한 달 앞당겨 조기 인도하며 시공 및 건조 능력을 입증했다. 이 선박은 15MW급 초대형 터빈 5기를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규모로,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1월 13일, 산업부로부터 '전략물자 자율준수무역거래자' 최고 등급인 AAA를 획득했다. 이는 내수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꾸준히 해외 수출 역량을 강화해 온 결과로 평가받는다. LS전선 또한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등 초고압직류송전(HVDC) 수요 확대에 힘입어 수주 잔고 9,000억 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결국 2025년 대한민국 해상풍력은 '정부 조직 개편'이라는 거대한 실험대 위에서, '내수 정체'와 '수출 호조'라는 양극화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기후부가 환경성을 담보하면서도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키지 않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아니면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제2의 태양광 사태'를 초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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