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부(Ministry of Economic Affairs)가 11월 28일 제2원전(궈성)과 제3원전(마안산)의 재가동이 기술적으로 타당하다는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진당(DPP) 정부가 2016년 이래 견지해온 '2025년 비핵가원(非核家園)' 정책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중국시보(China Times)와 연합보(United Daily News) 등 대만 주요 언론들은 이튿날인 29일 이를 1면 톱기사로 다루며 에너지 정책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경제부는 대만전력공사(Taipower)가 제출한 3개 원전 현황 분석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2024년과 올해 5월 각각 가동을 중단한 제3원전과 2021년·2023년 정지한 제2원전의 재가동을 '실현 가능(feasible)'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8년·2019년 폐쇄된 제1원전(진산)은 폐로 절차가 8년 경과하고 핵심 설비의 노후화가 심각해 재가동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만전력공사 쩡원성(Tseng Wen-sheng) 이사장은 내년 3월까지 구체적인 재가동 계획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Nuclear Safety Commission)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안전 검사와 규제 심사를 병행하는 '투트랙(two-track)' 방식을 통해 행정 소요 시간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가장 최근인 올해 5월 17일까지 가동됐던 제3원전 마안산 2호기가 빠르면 2027년 전력망에 재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 증가가 자리한다. S&P 글로벌 분석에 따르면 대만 최대 반도체 기업 TSMC의 전력 소비량은 2023년 대만 전체 전력의 약 8%를 차지했으나, 2030년에는 23.7%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나노(nm) 공정 양산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사의 최신 'High-NA EUV' 노광 장비는 기존 장비보다 10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한다.
에너지 안보 차원의 우려도 정책 변화를 가속화했다. 대만은 에너지의 97~9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전력 생산의 약 50%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의 LNG 비축량은 여름철 전력 피크 시 약 11~14일 분량에 불과해, 중국의 해상 봉쇄 시 2주 만에 전력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취약성이 지적돼 왔다. 반면 원전 핵연료는 한 번 장전하면 18개월에서 24개월간 교체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봉쇄 저항력이 높다.
대만의 원전 재가동 결정은 미국과 일본의 정책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미국은 올해 8월 2022년 폐쇄됐던 미시간주 팰리세이즈(Palisades) 원전의 재가동을 승인해 역사상 최초로 폐로 원전을 부활시켰다. 일본 역시 지난달 니가타현 지사가 세계 최대 규모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6·7호기 재가동에 대한 조건부 승인 의사를 밝히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대만 내부적으로는 올해 5월 입법원이 국민당(KMT)과 민중당(TPP) 주도로 원전 운영 허가 신청 기한 제한을 철폐하는 법 개정을 단행하면서 법적 장애물이 제거됐다. 8월 23일 실시된 제3원전 재가동 국민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부결됐으나, 투표장에 나온 유권자의 74.17%가 찬성해 여론의 변화를 확인시켰다.
라이칭더(Lai Ching-te) 총통은 국민투표 직후 "안전이 보장되고(Safety), 핵폐기물 해결책이 마련되며(Waste solution), 사회적 합의(Consensus)가 있다면 첨단 원전 기술을 배제하지 않겠다"며 '3대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줘룽타이(Cho Jung-tai) 행정원장(총리) 역시 "원전이 안전하다면 2027년 재가동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발언하며 정부의 정책 전환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만 2027년 재가동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3원전 설비 교체와 안전성 강화 작업에는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등 미국 기업의 부품 공급과 기술 자문이 필수적이며, 제2원전의 경우 원자로 내 포화 상태인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저장 시설로 옮기는 추가 과정이 필요하다. 재가동 예산안을 둘러싼 입법원 내 정치적 공방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워싱턴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은 지난달 17일 보고서를 통해 대만이 LNG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며, 주대만미국협회(AIT)도 에너지 안보 강화 차원에서 원전 유지를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원전 재가동은 동북아시아 에너지 안보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며, 한국 원전 기업들에게도 설비 교체 및 건식 저장 시설 건설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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