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평등을 향한 끊임없는 목소리, 홍세화 작가 별세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
'똘레랑스'가 없는 가진 자와 강한 자의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일 뿐

안후중 선임기자 승인 2024.04.21 14:09 | 최종 수정 2024.04.21 14:14 의견 0

홍세화 씨가 18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지난해 2월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칼럼 집필과 강연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홍 작가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후 33년간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현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의 대표작인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망명 생활 속에서 느낀 고독과 어려움, 그리고 프랑스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에세이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몇년 후 출간한 두 번째 에세이집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역시 프랑스적 창의력과 독창성의 바탕을 이루는 개성존중이 '똘레랑스'의 미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으로 평가받는 '똘레랑스'는 우리말로 '아량'이나 '관용' 정도로 번역하지만, 실제로는 관용 정도의 의미를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독재, 군사정권, 흑백논리로 도배되어온 당시 우리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우리가 그 시대를 뛰어넘어 진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위한 화두가 되고있다.

(사진=노동과세계)


그의 인생 항로에 큰 영향을 준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은 유신정권 말기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당시 정부가 이 단체를 적발했다고 발표하고, 조직원 74명 중 20명을 '반국가단체 조직 및 간첩혐의'로 검거했고, 5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하지만 당시 고문이 자행되면서 정부의 발표에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다.

남민전 관련자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했으며 현재 생존 관련자들도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2006년 3월 13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하경철)는 관련자 중 시인 김남주 등 29명이 반유신활동을 했다는 점을 근거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다. 북한과 직접 연계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해당 조직이 극좌 혁명적 사회주의, 좌익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가졌던 것은 분명해 당시에는 물론 지금도 이념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평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02년 귀국해 한겨레 신문 기획위원, 참여연대 공동사회장, 진보신당 대표 등을 역임하며 언론 활동과 사회적 운동에 앞장섰다. "시민참여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홍 작가는 지난해 1월 한겨레에 기고한 마지막 칼럼에서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똘레랑스'를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며 젊은 세대에게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의 중요성을 환기 시켰다.

실제로 내가 동의하지 않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똘레랑스'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대로 용인하는 개인과 집단들 사이의 다양성 존중과 평화적 공존을 함의하고 있다. 특히 우리말 '관용'이 불평등한 힘의 차이에서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라면 힘이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는 '똘레랑스'는 공동체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데 인권을 포함해 받드시 필요한 사회적 가치다.

홍 작가는 '똘레랑스는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것'으로,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에 기반한 운영과 관리의 제도지만 이 제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똘레랑스라는 철학이라는 생각을 남겼다. 똘레랑스가 없는 민주주의는 가진 자와 강한 자의 민주주의 일 뿐이며, 전체의 의사와 다른 소수의견은 탄압받기 쉽기에 소수의견이 존중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기 보다 전체주의라는 것으로 지금도 유효한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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