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열병식은 단순한 군사 퍼레이드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양옆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란히 선 장면은, 1959년 이후 66년 만에 북중러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역사적 순간이자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을 상징하는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였다.

이번 회동은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공고화된 한미일 3각 공조에 대한 명백한 맞대응으로, 세계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선명한 진영 대결 구도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유라시아 대륙을 중심으로 한 반서방 연대의 구조화이자 '신냉전'의 본격적인 서막을 여는 분수령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빚어낸 '편의를 위한 축'

북중러 3각 연대는 이념적 동질성에 기반한 과거 냉전 시대의 동맹과는 성격이 다르다. 각국의 절박한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형성된 '편의를 위한 축(axis of convenience)'에 가깝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통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리더로서의 비전을 과시했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현시대를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의 기로로 규정하며 '인류 운명 공동체' 구축을 주창했다. 이는 서방의 가치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규합하려는 의도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전방위적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에게 중국은 경제적 생명선과 다름없다. 중국은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거 구매하며 제재 효과를 무력화했고, 양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와 역사적 진실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반미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북한에게 이번 다자외교 무대 데뷔는 국제적 고립 탈피와 경제난 극복, 그리고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라는 다목적 포석이다. 6년여 만에 이뤄진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대만, 신장 등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양국 관계의 완전한 복원을 알렸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밀착한 러시아와의 관계를 과시하며 양대 후원국 사이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려는 계산도 깔려있다.

한미일 동맹의 시험대와 동북아 안보 지형의 격변

북중러의 결속은 곧바로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이어진다. 동북아 안보 지형은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대결 구도로 고착화되었으며, 과거와 같은 전략적 모호성의 공간은 사라졌다.

일본은 이번 사태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군사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양대 강국의 후원을 등에 업은 북한의 자신감 표출로 해석하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일본은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와 미일 동맹 심화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캠프 데이비드에서 구축된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을 공고히 하는 것을 핵심 대응 전략으로 삼고 있다. 북방 3국의 통합된 위협에 맞서기 위해 3국간 연합 훈련, 정보 공유, 정책 공조를 심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라는 판단이다. 북중러의 결속이 역설적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제도화를 가속하는 촉매제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사태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자신했지만, 이는 수사적 제스처에 가깝다. 국무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면에서 , 미국은 일본에 최신 무기 시스템을 배치하고 인도와의 군사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하는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 및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전망: 갈라진 세계, 새로운 질서를 향한 경쟁

베이징 삼두체제의 등장은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향후 국제 정세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진영 대결의 심화: 양측 진영은 내부 결속을 다지며 상대방의 약한 고리를 공략하는 '쐐기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특히 북중러는 정보전, 경제적 강압 등을 통해 한미일 3국 관계의 균열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UN 등 국제기구의 무력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대상국인 북한과 연대함에 따라, UN은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해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는 브릭스(BRICS) 등 대안적 기구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구애 경쟁: 이번 열병식에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국가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이들이 미중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하며 독자 노선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세계 질서의 향방은 어느 진영이 이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더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포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2025년 베이징 열병식은 새로운 지정학적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미일 3국은 동맹의 제도화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확대하고, 북중러 블록의 내부 모순을 파고드는 정교한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시작된 거대한 체스 게임은 이제 막 서막을 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