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이후 건설된 아파트 단지. 마리우폴에서 광범위하게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되고 있다./나무위키 자료
2025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우크라이나 점령지 내 ‘무주물(ownerless property)’ 처리 법안은 현대 문명사가 목도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국가 주도 약탈’이다. 러시아 의회가 통과시킨 이 법은 도네츠크, 루한스크, 헤르손, 자포리자 등 4개 점령지에서 주인이 없는 부동산을 러시아 정부 소유로 귀속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이를 두고 “러시아가 스스로를 ‘도둑 국가(thief state)’로 선포했다”고 절규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는 단순한 재산권 침해를 넘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물리적으로 지우고 점령지의 인구 구조를 영구히 바꾸려는 ‘인구 공학(demographic engineering)’적 만행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의 실행 과정은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정면으로 유린한다. 점령 당국이 빈집을 공고하면 원소유자는 불과 30일 이내에 직접 출석해 소유권을 증명해야 한다. 전선의 포화를 피해 떠난 950만 명의 피난민에게, 생명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오라는 요구는 사실상 재산 포기 각서를 쓰라는 협박과 다름없다. 게다가 소유권을 인정받으려면 러시아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조건은 “재산을 지키려면 적국의 국민이 되라”는 잔혹한 충성심 강요다. 이는 인간이 자신이 나고 자란 터전으로 돌아갈 천부적 권리인 ‘귀환권(Right to Return)’을 행정적 절차로 말살하는 반인본주의적 폭력이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이번 조치는 명백한 전쟁범죄다. 1907년 헤이그 규정 제46조는 “사유 재산은 존중되어야 하며 몰수될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그러나 러시아는 ‘로스레에스트르(Rosreestr, 연방 토지청)’를 앞세워 기존 등기 기록을 세탁하고, 2025년 8월 기준 55만 개에 달하는 부동산을 자국 시스템에 편입시켰다. 이렇게 약탈한 주택은 러시아 참전 용사와 이주민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군사적 필요가 아닌 자국민 정착을 위해 피점령 주민의 재산을 뺏는 행위는 제네바 협약 제49조와 로마 규정이 금지하는 중대한 범죄다.
문제는 이러한 ‘법적 알박기’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준비 중인 한국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약 9,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시장에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조작한 등기부와 우크라이나의 원본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현지 자산을 매입하거나 임차했다가는 ‘오염된 소유권(Toxic Title)’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이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은 물론, 전쟁범죄 자산을 활용했다는 국제적 오명을 뒤집어쓰고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 심각한 리스크다.
정부는 이제 모호한 줄타기를 멈추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선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외교부는 러시아가 발급한 점령지 내 부동산 등기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비승인 정책(Non-Recognition Policy)’을 대내외에 공식 천명해야 한다. 둘째, 산업통상자원부는 재건 사업 참여 기업들에게 점령지 부동산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에 대한 정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앞선 IT 기술을 ODA(공적개발원조)로 제공하여 우크라이나의 토지 대장을 디지털화하고 영구 보존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는 파괴된 정의를 기술로 복원하는 실질적인 인본주의 외교가 될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적 밀착이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러시아의 무법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북한에게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臟物) 위에 세워진 평화는 없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눈앞의 이익을 쫓다 ‘장물 취득’의 공범이 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가치 위에서만 진정한 국익도 지켜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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