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혼다 배터리 합작공장 조감도/LG에너지솔루션 자료


LG에너지솔루션(LG Energy Solution)이 24일, 일본 혼다(Honda Motor Co., Ltd.)와의 미국 합작법인 'L-H 배터리 컴퍼니(L-H Battery Company)'가 보유한 건물 및 구축물 자산을 혼다의 미국 현지 법인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거래 규모는 11월 말 기준 자산 가치로 약 4조 2212억 원에 달하며, 대금은 내년 상반기에 수령할 예정이다. 이번 거래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와 미국 정책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 업계가 선택한 '실리 외교'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각 대상은 오하이오주 제퍼슨빌(Jeffersonville)에 위치한 합작 공장의 건물과 구축물이며, 배터리 생산의 핵심인 토지와 제조 장비는 제외됐다. 합작법인은 매각 후에도 해당 건물을 혼다 미국 개발·생산 법인(Honda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f America, HDMA)으로부터 임차해 사용할 예정이어서 생산과 운영 계획에는 변동이 없다. 이는 전형적인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으로, 자산을 현금화하면서도 생산 거점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자산 경량화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번 매각의 배경으로 전기차 수요의 일시적 정체, 즉 '캐즘(Chasm)' 현상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둘러싼 정책적 불확실성을 들었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약 43만 8487대로 전년 동기 대비 29.6% 증가했으나, 이는 연방 세액 공제 종료를 앞두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서두른 '선수요' 효과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이 41%까지 하락하는 등 경쟁은 치열해졌고, 한국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점유율도 올해 상반기 16.4%로 전년 대비 5.4%포인트 하락했다.

이번 거래에서 혼다는 9월 말 기준 약 276억 9500만 달러(약 37조 원)의 현금 자산을 보유한 재무 여력을 바탕으로 합작 공장 건물을 매입했다. 혼다는 오하이오주 메리스빌(Marysville), 이스트 리버티(East Liberty), 안나(Anna) 엔진 공장을 전기차 생산 기지로 전환하기 위해 7억 달러 이상을 투자 중이며, 이번 자산 매입으로 배터리 공급망의 물리적 기반을 내재화하게 됐다. 혼다는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를 동일 라인에서 혼류 생산하는 '유연한 생산 라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시장 수요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L-H 배터리 컴퍼니는 LG에너지솔루션이 51%, 혼다가 49% 지분을 보유한 합작법인으로, 설계 자유도가 높은 파우치형(Pouch-type) 배터리를 생산한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전기차뿐 아니라 풀하이브리드(FHEV)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열려 있어, 단일 제품 리스크를 줄이고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다. 공장은 약 22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미국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경제 부활에 기여하고 있으며,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인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인증 획득을 추진 중이다.

오하이오주 제퍼슨빌(Jeffersonville) 위치도


이번 거래는 한·미·일 3국 경제 안보 협력의 민간 차원 실천으로도 의미가 크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선언 이후 한·미·일은 안보를 넘어 경제와 기술 분야 협력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과 혼다의 합작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자유 민주주의 공급망'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 IRA는 북미 제조 배터리에 첨단 제조 생산 세액 공제(AMPC)를 제공하며, 중국 자본 개입을 차단하는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을 두고 있어, 한일 합작은 이러한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청정 파트너십'으로 평가받는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선제적 자산 유동화 전략이 경쟁사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는 평가다. SK온은 공격적 설비 확장으로 재무 부담이 가중돼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 등 외부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삼성SDI는 20년 만에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적극적 행보로 전환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산 매각으로 가장 유연한 재무 구조를 확보하게 됐으며, 이는 향후 시장 반등 시 가장 빠르게 투자 여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번 거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관통하는 한국 기업의 생존법이자 경제 안보를 지키는 실용 외교의 모델로 평가된다. 전기차 캐즘 앞에서 고정 관념을 깨고 자산을 유동화해 현금을 확보한 것은 실리의 승리이며, 혼다와의 결속 강화와 미국 내 생산 거점 유지는 한·미·일 경제 동맹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명분을 확립한 것이다. 지역 사회와 상생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경영을 통해 민주주의, 인본주의, 자연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비즈니스 모델에 녹여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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