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보도영상 캡춰


3천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가 단순한 기업 보안 사고를 넘어 한미 간 디지털 통상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로버트 오브라이언(Robert O'Brien)이 한국 당국의 쿠팡 조사를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표적 수사"라고 규정하며 공개 경고에 나선 가운데,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8일 예정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쿠팡은 지난 11월 말 사상 최대 규모의 데이터 유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포렌식 조사 결과 침해는 6월 24일부터 시작됐으며, 퇴사 직원의 접근 권한이 5개월간 삭제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최대 전체 매출액의 3퍼센트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검토 중이다. 쿠팡의 한국 내 연 매출이 약 40조 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제재가 예상된다.

이에 쿠팡은 대규모 워싱턴 로비를 가동했다. 미 상원 로비 공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의 로비 지출액은 2024년 387만 달러로 전년 대비 150퍼센트 급증했다. 쿠팡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회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트럼프 측근인 제프 밀러(Jeff Miller)가 운영하는 로비회사 밀러 스트래티지(Miller Strategies)를 고용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무역대표부를 상대로 집중 로비를 펼쳤다.

오브라이언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복원한 한미 무역 균형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개별 기업의 법 위반 문제를 국가 간 무역 분쟁의 틀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발언으로 해석된다. 미 언론 폴리티코는 USTR이 한국의 플랫폼 규제 추진에 불만을 표시하며 FTA 회의를 보이콧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범정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쿠팡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쿠팡 서울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별도 조사에 착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으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의 플랫폼법이 "혁신을 저해하고 미국 기업을 차별하는 규제"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대표 제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는 한국이 규제를 강행할 경우 무역법 301조에 따른 보복 관세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의 주가는 사태 발생 후 25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주주들이 쿠팡을 상대로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지연을 이유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쿠팡은 침해 사실을 내부적으로 확인한 후에도 SEC가 요구하는 4영업일 이내 공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디지털 시대 국가 주권의 새로운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정보 보호를 위해 정당한 법 집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동맹국의 통상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 외교 당국은 이를 단순한 통상 마찰이 아닌 국가 안보와 디지털 주권이 결부된 복합 안보 사안으로 인식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1분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과징금 결정이 향후 한미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천억 원대 이상의 과징금이 확정될 경우 미국의 즉각적인 무역 보복이 예상되며, 반대로 과징금이 대폭 감경된다면 한국 내에서 외국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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