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자료
2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19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이 대한민국과 전 세계 700만 재외동포 사회의 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끄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이날 행사는 재외동포청 주최로 '700만 재외동포와 함께 세계를 잇다, 미래를 밝히다'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됐으며,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김경협 재외동포청장, 김석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국내 주요 인사와 67개국 한인회장 등 370여 명에서 450명에 이르는 동포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대통령, 재외국민 주권 행사 개선 천명
이재명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재외동포 사회가 오랫동안 요구해온 핵심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개선을 약속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먼저 재외동포의 역사적 기여를 높이 평가하며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120년의 긴 세월 동안 조국을 마음에 품은 채 동포 사회를 일궈오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를 일궈낸 진정한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은 세 가지 핵심 정책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재외국민 투표제도 개혁이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3시간을 가서 투표했다", "1박 2일이 걸려 투표했다"는 사례들을 직접 언급하며 "가까운 곳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권을 쉽게 행사할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우편 투표 도입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검토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둘째,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 문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동포 사회의 염원인 복수 국적 연령 하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혜를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차세대 동포들이 병역이나 직업 선택의 불이익 없이 모국과의 유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오랜 염원에 대한 화답이다.
셋째, 영사 기능의 대폭적인 강화와 재편을 약속했다. 대통령은 "현지 교민 여러분들의 대한민국을 향한 그 충심들이 제대로 조직되고 발휘될 수 있도록 영사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해외 순방 중 "한인회나 이런 자조 조직을 만드는 데 정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언급하며, 앞으로는 영사관이 동포 사회의 자생적 조직 형성과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동포사회, 자율성 강화 결의
대통령의 기념사에 이어 고탁희 중국한인회총연합회장 겸 2025 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이 재외동포를 대표해 답사했다. 그는 대통령이 제시한 비전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재외국민 투표제도 개선과 복수국적 문제 해결 등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신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기념식과 연계해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나흘간 열린 '2025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는 67개국 한인회장 및 대륙별 연합회 임원 370여 명이 참가해 동포 사회가 직면한 현안을 논의했다. 대회 마지막 날 참가자들은 10개 항의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인회들이 앞으로 스스로 세계한인회장대회를 개최하자"는 안건이 포함된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 주도로 열렸던 대회의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으로, 동포 사회가 대회의 주체가 되어 의제를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정부는 파트너로서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또한 결의문은 "재외동포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재외투표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적극 환영하고, 이를 전폭 지지한다"고 명시했으며, "재외동포 사회의 오랜 염원인 복수국적 연령 하향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91명 유공자 포상, 헌신의 얼굴들
이날 기념식에서는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과 동포 사회 발전에 기여한 총 91명의 유공자가 정부포상을 받았다. 이 중 6명은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훈·포장을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다.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권홍래 한국브라질장학회 고문은 브라질 한인사회후원회 회장으로서 상파울루 한인타운의 치안 문제 해결과 한인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재정 기반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김진성 호주한인회총연합회 고문은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호주 내 9개 지역 한인회를 아우르는 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차세대 리더 육성 포럼을 개최하는 등 동포 사회의 미래를 위해 헌신했다.
같은 훈장을 받은 이정형 재일민단 야마나시현지방본부 단장은 재일 한인 사회의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 속에서 묵묵히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왔다. 국민포장을 받은 이경윤 동부자바한인회 고문은 1986년부터 25년 이상 인도네시아 한인회 임원으로 활동하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확진자 지원과 백신 접종, 응급 환자 이송 등에 헌신했다.
박종영 쿠웨이트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 역시 국민포장을 받았다. 그는 수십 년간 쿠웨이트에서 태권도를 지도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태권도를 통해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중동 지역에 널리 알렸다. 김영숙 안산시고려인문화센터 센터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녀는 2011년 한글 야학을 시작으로 임금 체불, 산재 등 노동 문제 상담, 자녀 교육 지원 등을 통해 국내 정착 고려인 동포들의 안정적인 사회 적응을 도왔다.
세계 한인의 날, 18년의 역사
세계 한인의 날은 2007년 5월 참여정부 시절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다. 이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기념일을 만들어달라는 재외동포 사회의 오랜 염원과 지속적인 건의에 대한 응답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만난 동포들로부터 이러한 요청을 직접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로 정한 것은 깊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날짜는 개천절(10월 3일)과 한글날(10월 9일) 사이에 위치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들이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잇는 중요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1회 기념식은 2007년 10월 5일 개최됐으며,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500여 명의 재외동포와 국내 주요 인사를 포함해 총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재외동포청, 정책 추진의 컨트롤타워
세계 한인의 날 제정이 동포 사회에 대한 상징적 인정의 표현이었다면, 2023년 6월 5일 출범한 재외동포청은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완결체다. 과거 재외동포 관련 업무는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예산과 정책 결정 권한의 한계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재외동포청은 재외동포 보호와 지원은 물론, 모국과의 교류 협력을 촉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며, 750만 한인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컨트롤 타워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재외동포청이 120년 전 최초의 공식 이민선이 출발했던 인천에 자리 잡은 것은, 재외동포 역사의 뿌리를 잊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정부의 상징적인 의지를 보여준다.
재외동포청이 발표한 올해 5대 핵심 추진과제는 ▲굳건한 재외동포정책 체계 확립 ▲새 시대 재외동포 정체성 함양 확대 ▲따뜻한 동포 맞춤형 보호·지원 ▲상생의 동포사회 네트워크를 통한 민생경제 회복 ▲편리한 동포생활 구현 등이다. 특히 전 세계 1,400여 개 한글학교에 대한 지원 예산을 증액하고, 차세대 동포 모국 초청 연수 참가 인원을 2,100명에서 2,600명으로 확대하는 등 차세대 동포의 한민족 정체성 교육을 강화한다.
정책 실현, 앞으로의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획기적인 약속들은 재외동포 사회에 큰 희망을 주었지만, 이를 실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있다. 재외국민 투표제도 개혁, 특히 우편투표 도입은 국내 정치권에서 공정성과 보안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은 여야 합의가 필수적인 사안이므로, 복잡한 입법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복수국적 허용 연령 하향은 병역, 납세 등 국민의 의무와 직결된 민감한 문제다. 대통령 스스로 "사회적 공감대"를 언급했듯이, 폭넓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제19회 세계 한인의 날을 통해 대한민국과 재외동포 사회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하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했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파트너십의 성공 여부가 향후 대한민국의 국제적 역량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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