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위치/구글맵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가 지난 1월 3일 미군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 체포 작전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다. 남미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의 조국이었던 이 나라는 2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군벌과 독재자들의 지배, 석유로 인한 부패, 그리고 민주주의의 실패를 반복하며 오늘날 770만 명이 넘는 난민을 낳은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되었다.

◆ 독립에서 카우디요 시대로: 군벌 지배의 시작

베네수엘라는 181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 전역을 해방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를 건설했으나, 1830년 베네수엘라가 분리 독립한 이후 그의 이상은 빠르게 퇴색했다. 호세 안토니오 파에스(José Antonio Páez)를 비롯한 군벌들, 이른바 '카우디요(Caudillo)'들이 권력을 놓고 끊임없이 투쟁했다.

19세기 내내 베네수엘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독재 정치를 펼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농업 중심의 빈곤한 국가였던 베네수엘라는 소수 지주 계급과 대다수 농민의 극심한 빈부 격차 속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고착화됐다.

◆ 석유 발견과 고메스 독재: '자원의 저주'의 시작

1908년 집권한 후안 비센테 고메스(Juan Vicente Gómez)는 27년간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그의 독재 기간 중인 1922년,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 바로소(Barroso) 유정에서 석유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세계적인 산유국으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막대한 석유 수입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 외국 석유 기업들과 결탁한 고메스와 그 측근들은 부를 독점했고,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렸다. 석유는 베네수엘라에 축복이 아니라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 불리는 자원의 저주를 가져왔다. 농업과 제조업은 쇠퇴했고, 국가 경제는 석유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로 변질됐다.

◆ 민주주의의 실험과 좌절: 푼토피호에서 카라카소까지

1958년 군사 독재자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Marcos Pérez Jiménez)가 민중 봉기로 축출된 후,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 실험을 시작했다. 주요 정당들은 권력을 분점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푼토피호 협약(Puntofijo Pact)'을 체결했다. 이 체제 하에서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까지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유가 하락은 베네수엘라 경제를 직격했다. 1989년 2월,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és Pérez)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긴축 정책을 시행하자 대중교통 요금이 급등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규모 시위와 약탈을 벌였고,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이 '카라카소(Caracazo)' 사태로 공식 집계만 276명이 사망했으나, 실제 사망자는 수천 명에 달한다는 증언도 있다.

카라카소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환멸은 깊어졌고, 이는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예고했다.

◆ 차베스 혁명: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집어삼키다

1992년 2월, 낙하산 부대 중령이었던 우고 차베스는 페레스 대통령을 상대로 쿠데타를 시도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차베스는 텔레비전에 출연해 "지금은(por ahora)"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이 짧은 연설은 그를 부패한 기득권에 맞서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1998년 12월,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와 "볼리바르 혁명"을 내세우며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빈곤층을 위한 사회 프로그램인 '미시온(Misión)'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고유가 덕분에 석유 수입이 급증하면서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초기에는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베스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법부, 선거관리위원회, 언론을 장악했다. 그는 대법원 판사 수를 늘려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웠고, 반대 언론을 탄압했다. 2002년 쿠데타 시도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석유 산업 파업을 겪으면서 차베스는 더욱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했다. 그는 국영석유기업 페데베사(PDVSA)에서 수천 명의 전문 인력을 해고하고 정치적 충성파로 대체했다. 이는 석유 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차베스는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양면적이었다. 빈곤율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민주주의 제도는 무너졌고, 석유 의존적 경제 구조는 더욱 심화됐다.

◆ 마두로 시대: 독재의 완성과 국가의 붕괴

차베스의 후계자로 지명된 니콜라스 마두로는 2013년 4월 특별 선거에서 야권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마두로는 차베스의 카리스마도, 정치적 수완도 없었다. 2014년부터 유가가 급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마두로 정권은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대신 권력 유지에만 집중했다. 2015년 총선에서 야권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마두로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회 권한을 무력화했다. 2017년에는 친정부 인사들로만 구성된 제헌의회를 일방적으로 설립해 입법권을 장악했다.

2018년 대선은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부정 선거였다. 주요 야권 후보들은 출마가 금지됐고, 투표율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2019년 1월, 야권이 장악한 국회의 의장 후안 과이도(Juan Guaidó)는 스스로를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했고, 미국을 비롯한 50여 개국이 그를 승인했다. 베네수엘라는 두 명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초유의 사태에 빠졌다.

2024년 7월 대선은 베네수엘라 현대사의 또 다른 분기점이었다. 국제 참관단과 야권의 집계에 따르면 야당 후보 에드문도 곤살레스가 약 70퍼센트의 득표율로 압승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마두로가 51퍼센트를 얻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야권은 투표소에서 확보한 개표 증명서를 공개하며 부정 선거를 폭로했지만, 마두로 정권은 권력을 내놓지 않았다.

◆ 조직화된 인권 유린: 국가 폭력의 체계화

마두로 정권 하에서 베네수엘라는 조직적인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공포 국가로 전락했다. 유엔 국제진상조사단(FFM)은 2024년 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 당국이 저지른 범죄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국가방위군(GNB)과 정보기관인 세빈(SEBIN), 군사정보총국(DGCIM)은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조준 사격을 가해 시민들을 살해했다. 유엔 조사단은 2024년 대선 이후 야권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크 아웃(Knock-out)' 작전을 확인했다. 이는 야간에 민가를 급습해 반정부 인사로 지목된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조직적 탄압이었다.

구금 시설에서는 고문이 일상적으로 자행됐다. 전기 충격, 질식, 성폭력이 자백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여성 수감자들은 특히 성폭력에 취약했으며, 임신한 여성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유엔 보고서는 구금 시설의 비인도적 환경도 지적했다. 과밀 수용, 식수와 의료 서비스 부족, 전염병 만연 등으로 수감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사법부는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불법 구금을 정당화했다. 2024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인권 침해를 저지른 관료에 대한 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마두로 정권은 사법 시스템을 통해 면책 문화를 확립했고, 이는 인권 유린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다.

◆ 난민 위기: 현대 최대 규모의 인구 이동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궁핍을 견디지 못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조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베네수엘라 난민과 이주민은 77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인구의 20퍼센트가 넘는 수치로, 시리아 난민 사태에 버금가는 현대 최대 규모의 인구 이동이다.

대다수 난민은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칠레, 브라질 등 인접국으로 이동했다. 콜롬비아만 해도 290만 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난민을 받아들였다. 난민들은 대부분 도보로 국경을 넘는다. 돈이 없어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을 넘는 위험한 여정에서 많은 이들이 탈진, 저체온증,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국경 지역에서는 범죄 조직이 난민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인신매매, 성착취, 강도, 살인이 빈발한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은 착취에 극도로 취약하다. 유엔 보고서는 베네수엘라 여성 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성매매에 내몰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들도 한계에 봉착했다.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은 자국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국경 통제를 강화하거나 입국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었고, 이는 난민들을 더욱 위험한 불법 경로로 내몰았다.

마두로 체포 이후 추가적인 정치 불안을 우려한 난민들이 다시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비상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인도주의 단체들은 식량, 의료, 임시 거처 제공을 위해 긴급 지원에 나섰지만,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 문화의 정치화: 침묵과 저항 사이

베네수엘라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로 대변되는 음악 교육의 기적을 일궈낸 나라다.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é Antonio Abreu)가 창설한 이 프로그램은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악기와 오케스트라 교육을 제공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은 엘 시스테마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 하에서 예술조차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거나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 차베스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두다멜은 2017년 5월 큰 결단을 내렸다. 반정부 시위 도중 엘 시스테마 출신의 비올라 연주자 아르망도 카냐스(Armando Cañas)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두다멜은 "더 이상은 안 된다(Enough is enough)"며 정권을 공개 비판했다.

이에 마두로는 두다멜을 "속았다"고 비난하며 그의 해외 투어를 취소시키는 등 보복을 가했다. 인권재단(HRF) 등 일부 단체는 두다멜이 그동안 정권의 선전 도구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문화계는 현재 독재에 대한 저항과 생존 사이에서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 생태 학살: 아르코 미네로의 비극

오리노코 강 남쪽, 아마존 열대우림과 맞닿은 아르코 미네로(Arco Minero del Orinoco) 지역은 베네수엘라의 자원이 어떻게 생태학적 재앙으로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2016년 마두로 정권은 부족한 외화를 충당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국토의 약 12퍼센트에 달하는 이 광대한 지역을 국가전략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자행되는 채굴 활동의 80~90퍼센트는 불법이다. '신디카토(Sindicatos)'라 불리는 범죄 조직과 부패한 군부, 콜롬비아 민족해방군(ELN) 같은 무장반군이 결탁하여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금을 채취하기 위해 수은과 시안화물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오리노코 강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2016년 이후 볼리바르 주에서만 7만4600헥타르 이상의 원시림이 사라졌다. 이는 서울시 면적을 넘어서는 규모다. 카우라 강 유역 원주민 여성들의 92퍼센트가 수은 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오염된 물은 대서양으로 흘러들어 카리브해 전역의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오염을 넘어선 '생태 학살(Ecocide)'이다.

◆ 국제사회의 분열된 대응

마두로 체포 이후 국제사회는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 외교부는 "주권 국가에 대한 노골적인 무력 사용"이라며 비난했고, 러시아는 이를 "무력 침략"으로 규정하며 유엔 안보리 소집을 주도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깡패적 본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주권 침해를 강력히 비난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반응은 이념에 따라 엇갈렸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은 마두로 정권에 비판적이었음에도 미군의 개입에는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었다"며 반대했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은 마두로 축출을 "자유의 승리"라며 환영했다.

◆ 한국의 고뇌: 원칙과 실리 사이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1965년 수교한 이래 60년 가까운 외교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 외교부는 마두로 체포 직후 "역내 긴장 완화와 민주주의 회복,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 존중"을 강조하는 신중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국제법 원칙을 지키려는 고뇌가 담긴 것이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2012년 수주한 푸에르토 라 크루스 정유공장 고도화 사업은 347억 달러 규모였으나 대금 미지급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대우건설의 오리노코 석유 저장 및 수송 시설 프로젝트도 진행이 불투명하며, 한국석유공사는 과거 투자 자산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협력하되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결권과 민주적 절차 회복을 지지하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난민 지원 등 인도적 지원에 적극 참여하고, 아르코 미네로의 환경 복구 사업에 한국의 기술과 공적개발원조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자원이 풍부한 국가가 부패와 독재, 포퓰리즘으로 인해 어떻게 붕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교훈이다. 시몬 볼리바르가 꿈꿨던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200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배신당했다. 770만 명이 넘는 난민, 조직화된 국가 폭력, 파괴된 생태계는 독재가 남긴 상처다.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선택을 존중하고, 인도적 위기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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