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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이 2030년까지 100개소의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22일 발표하며, 지방 소멸 위기와 기후 변화에 동시에 대응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주민 주도형 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에 발맞춰, 지역 주민이 직접 태양광 발전 사업의 주체가 되어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구조다.

해남군은 이미 관내 11개 면에서 40개소의 참여 의향을 접수하며 초기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마을당 300킬로와트(kW)에서 최대 1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주민 협동조합이나 법인이 직접 운영하며, 발전 수익은 현금 배당, 마을 복지 사업, 전기요금 절감 등으로 환원된다. 과거 외부 자본이 토지를 임대해 수익을 독점하던 방식과 달리, 주민들이 생산자이자 수혜자가 되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설치 대상 부지는 유휴부지, 영농형 태양광, 지붕형 태양광, 공공부지 등으로 다각화했다. 특히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 상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하부에서는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일본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의 총수익은 벼농사만 지을 때보다 약 1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남군은 고령화된 농촌 지역 주민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종합서비스기업(ReSCO) 제도를 도입했다. ReSCO는 기획부터 시공, 운영, 행정 지원까지 전 주기를 관리하며,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사업을 통해 총사업비의 85% 이내에서 융자를 지원해 주민들의 초기 자본 부담을 크게 낮췄다.

이 모델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21세기적 변용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새마을운동이 중앙 집중형 전력망을 통해 농촌에 전기를 시혜적으로 공급했다면, 햇빛소득마을은 에너지를 소비 대상에서 생산과 소득의 원천으로 전환했다. 주민을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능동적 생산자로 격상시키는 철학적 전환이 담겨 있다.

특히 올해 10월 1일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농림축산식품부와 합동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과거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행정 지연이 해소되고 원스톱 인허가가 가능해졌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환경부의 기후 정책 기능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 기능을 통합한 조직으로,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 수급 전략을 단일 거버넌스 하에서 추진한다.

해남 모델은 국가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한국 수출 기업들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비례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특히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데, 해남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전력을 기업 전력구매계약(PPA)이나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를 통해 공급받으면 간접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이 CBAM 대상에 포함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부담할 인증서 비용은 2026년부터 2034년 사이 약 5억 8천8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해남의 100개 마을이 생산하는 전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확충해 RE100 이행률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녹색 전환을 지원하는 공급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모델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소프트파워 자산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과거 한국은 새마을운동 경험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전수하며 외교적 자산을 축적했다. 해남의 성공 사례는 'K-그린 빌리지(K-Green Village)'라는 브랜드로 공적개발원조(ODA) 패키지화가 가능하며, 전력망 인프라가 열악한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독일과 덴마크 등 재생에너지 선진국들도 유사한 시민 주도 모델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이뤘다. 독일 바이에른주에는 260여 개의 시민에너지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며, 인구 2천500명의 작은 마을 빌트폴츠리트(Wildpoldsried)는 자체 소비 전력의 321%를 생산해 연간 약 600만 유로의 판매 수익을 마을 복지에 재투자하고 있다. 덴마크는 2009년 법으로 풍력 프로젝트 지분의 최소 20%를 지역 주민에게 매각하도록 의무화했다.

다만 전력망 포화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전라남도는 태양광 발전 최적지이지만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실어 나를 송전망이 부족해, 봄과 가을철에는 발전을 강제로 중단하는 출력 제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00조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전력의 투자 여력 부족으로 계통 보강이 지연되고 있어,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개정을 통해 공공성 있는 사업에 계통 접속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안군의 선행 사례인 '햇빛연금'은 2024년 4분기 기준 누적 220억 원을 돌파하며 실제 인구 유입을 견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남군의 햇빛소득마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과감한 전력망 투자와 국회의 입법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국을 절대 빈곤에서 구했듯, 2030년대 햇빛소득마을은 기후 위기와 지역 소멸이라는 21세기 난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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