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무실에서 2025년 3월 21일 제공한 사진. 테헤란에서 열린 연례 노루즈(이란 새해) 연설에서 군중에게 연설하는 모습. /사진=KHAMENEI.IR/AFP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86)가 반정부 시위 확산에 대비해 러시아 망명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첩보가 포착됐다.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는 4일(현지시간) 서방 정보기관을 인용해 하메네이가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병대의 통제력 상실에 대비한 비상 탈출 계획인 '플랜 B(Plan B)'를 수립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에는 하메네이 본인과 차남 모즈타파 하메네이(Mojtaba Khamenei), 최측근 20명의 모스크바 망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하메네이 측근들은 이미 해외 자산 이전과 탈출로 확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하메네이의 수석 정보 고문 알리 아스가르 헤자지(Ali Asghar Hejazi)가 러시아 관리들과 비밀 접촉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위한 탈출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첩보도 나왔다. 정권 핵심 인사의 이탈 움직임은 이란 신정체제의 심각한 내부 균열을 보여준다.
서방 정보기관이 작성한 하메네이 심리 분석 보고서는 그를 "편집증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장기 사상가"로 규정했다. 2025년 6월 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 당시 테헤란 지하 벙커에 은신하며 자국 군대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하메네이는 깊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은 것으로 분석됐다. 전 이스라엘 정보요원 베니 샤브티(Benny Sabti)는 "하메네이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메네이 정권의 위기는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의 전면전 패배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은 '떠오르는 사자(Rising Lion)' 작전을 통해 이란 내 27개 주, 150개 이상의 목표물을 타격했다. 테헤란은 22개 지구 중 17개 지구가 공격받았다. 이란의 S-300 방공망은 개전 초기 무력화됐고, 미사일 발사대 250기와 탄도미사일 1천 발이 파괴됐다.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로 포르도(Fordow) 우라늄 농축 시설을 타격했다. 이란은 500여 발의 미사일로 반격했으나 이스라엘 방어체계에 90% 이상 요격됐다. 전쟁으로 1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군사 인프라가 초토화됐다.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선전해온 정권이 자국 영공조차 방어하지 못한 현실은 국민들에게 깊은 환멸을 안겼다.
전쟁 패배 후유증은 경제 붕괴로 이어졌다. 1월 5일 기준 이란 리알화 가치는 미화 1달러당 140만 리알까지 폭락했다. 1979년 혁명 당시 70리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화폐 기능이 사실상 상실된 수준이다. 공식 인플레이션율은 42.2%로 발표됐지만 실제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72%를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500 토만에서 최대 5,000 토만으로 인상하자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 테헤란 대바자(Grand Bazaar) 상인들이 12월 28일 파업에 돌입하면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1월 들어 26개 주 220개소로 번졌으며, 로레스탄주 아즈나(Azna), 누라바드(Nurabad), 파르스주 마르브다슈트(Marvdasht) 등 전통적 보수 성향 지역에서도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레자 샤, 당신의 영혼에 축복을(Reza Shah, Bless Your Soul)", "왕이여 영원하라(Javid Shah)" 같은 친왕정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자도 레바논도 아니다, 내 목숨은 이란을 위해(Neither Gaza nor Lebanon, my life for Iran)"라는 구호도 확산되고 있다.
인권단체 보고에 따르면 1월 1일 로레스탄주 아즈나에서는 15세 소년이 보안군 총격에 사망했다. 1월 4일까지 사망자는 16~19명, 체포자는 1천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산탄총과 실탄이 사용되고 있으며, 체포자에 대한 고문과 가혹 행위도 보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1월 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 정권이 평화로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살해한다면 미국이 그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며 "우리는 장전되었고 준비되었다(Locked and loaded)"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정권 교체를 목표로 직접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러시아는 2024년 시리아 아사드(Assad) 대통령을 받아들인 것처럼 하메네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월 체결된 이란-러시아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은 이러한 협력의 법적 토대를 제공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된 러시아가 이란 정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교민 보호 차원에서 이란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 원유 수입의 70% 이상이 중동산이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전쟁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을 통한 육로 철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현재 이란에 남아 있는 교민과 주재원을 위한 비상 철수 계획을 점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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