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된 주방위군 모습/FNTV 영상 캡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 초 오리건주와 일리노이주 주지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방위군을 강제로 연방군으로 전환해 배치하려다 법원의 제동을 받으면서 심각한 헌법 위기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와 일리노이주 시카고가 위험하다며 주방위군 파병을 추진했다. 그는 포틀랜드를 "'국내 테러리스트'들에게 '포위'된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현지 상황은 달랐다. 오리건 주 관리들은 포틀랜드 이민세관단속국(ICE) 건물 앞 시위가 "규모가 작고 비교적 통제되고 있었으며 심각하게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을 과장했다는 지적이다.

법원 명령 나온 뒤에도 다른 주 병력 보내

사건은 10월 4일 토요일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리건 주방위군 200명을 연방군으로 바꿔 포틀랜드에 보내라고 명령한 것이다. 오리건주는 즉시 법원에 소송을 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을 맡은 카린 임머거트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판사였다. 하지만 임머거트 판사는 오리건 주방위군 파병을 금지했다. 판사는 "대통령의 결정이 사실과 전혀 무관하다"며 "미국은 계엄령이 아닌 헌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법원 명령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후인 10월 5일 일요일,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방법을 썼다. 이미 연방군으로 전환돼 있던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을 포틀랜드에 보낸 것이다. 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우회한 셈이다.

여기에 텍사스 주방위군 400명을 포틀랜드와 시카고에 보내라는 국방부 문서까지 알려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는 즉시 소송에 합류하며 이를 "법과 권력의 숨 막히는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주말 밤 긴급 법정에서 판사와 법무부 충돌

임머거트 판사는 주말 저녁에 이례적으로 긴급 법정을 열었다. 판사는 행정부가 자신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법정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공방이 벌어졌다. 법무부 변호인은 첫 번째 명령이 오리건 주방위군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머거트 판사는 "요점을 놓치고 있다"며 판결을 일부러 피해가려 한다고 질책했다.

결국 임머거트 판사는 더 강력한 명령을 내렸다. 어느 주의 주방위군이든 오리건으로 보내는 것을 전면 금지한 것이다.

"군대 소집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하겠다" 최후통첩

같은 시기 일리노이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당신의 군대를 소집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일리노이주와 시카고시는 법원에 소송을 내며 이를 "트럼프의 침공"이라고 표현했다. 시카고 연방법원 에이프릴 페리 판사도 "일리노이에서 반란의 위험이 있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14일간 파병 금지 명령을 내렸다.

국방부 관리들조차 이 파병 결정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백악관 최고위층이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뛰고 독단적으로 결정했음을 보여준다.

"완전한 권한" vs "주의 권리"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법적 근거를 들었을까? 백악관 보좌관 스티븐 밀러는 대통령이 "완전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의 판단을 법원이 재검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27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반란 위험이 있는지는 대통령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부는 미 연방 법전 제10편 12406조를 법적 근거로 제시했다. 이 조항은 "반란 또는 반란의 위험"이 있을 때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연방군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백악관 대변인 애비게일 잭슨은 "대통령이 연방 자산과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인 권한을 행사했다"며 "상급 법원에서 정당성을 입증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주 정부들은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포틀랜드에 '반란'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 정부들은 이번 조치가 연방주의 원칙과 수정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주 정부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반박했다.

더 강력한 '폭동진압법' 발동 위협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욱 강력한 법인 '폭동진압법'을 들고 나왔다. 이 1807년 만들어진 법은 주지사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현역 군대를 국내에 투입할 수 있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원이나 주지사, 시장들이 우리를 방해한다면" 이 법을 발동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행정부가 시위를 표현할 때 의도적으로 '폭동', '반란' 같은 용어를 쓴 것도 이 법 발동을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민주당은 단합, 공화당은 분열

민주당 주지사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미국적", "정치적 무기"라고 비판했고,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트럼프의 침공"이라고 규정했다. 오리건의 티나 코텍 주지사도 "위험하고 비미국적"이라고 비난했다.

24명의 주 법무장관과 주지사들이 오리건주를 지지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뉴섬과 프리츠커 주지사는 전미주지사협회(NGA)가 트럼프를 규탄하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까지 밝혔다.

반면 공화당은 갈라졌다. 텍사스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자기 주 방위군을 일리노이에 보내는 것을 승인하며 트럼프를 지지했다. 오리건 공화당도 초기에는 파병을 환영했다.

하지만 일부 공화당 주지사들은 반대했다. 전미주지사협회 의장인 케빈 스팃 오클라호마 주지사(공화당)는 "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버몬트의 필 스콧 주지사(공화당)도 "불필요하고 위헌적"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주의 권리'는 공화당이 내세우던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주권을 지키려 하고, 공화당이 중앙정부 권한을 옹호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위험한 도시들을 군 훈련장으로"

군 관계자들의 우려도 컸다. 퇴역 장성 랜디 매너와 윌리엄 엔야트는 주방위군이 훈련받지 않은 임무에 투입되는 것, 군인들의 사기 저하, 그리고 미국 시민을 상대로 군대를 쓰는 위험한 선례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는 최고위 군 지휘관들 앞에서 "우리는 이 위험한 도시들 중 일부를 우리 군의 훈련장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역 장성 배리 맥카프리는 이를 "기괴하고 불안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군을 헌법이 아닌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군이 특정 정당의 도구로 인식되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군 내부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민권운동 시대와 정반대 상황

과거에도 대통령이 주지사 반대를 무릅쓰고 주방위군을 연방군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1957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흑인 학생들의 학교 등교를 막는 아칸소 주지사에 맞서 주방위군을 연방군으로 전환했다. 대법원의 인종차별 금지 판결을 주정부가 거부하자, 연방법을 집행하기 위해 개입한 것이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권운동 행진을 보호하지 않는 앨라배마 주지사에 맞서 주방위군을 연방군으로 만들었다. 이 역시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도 폭동진압법이 발동됐지만, 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직접 연방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였다.

역사적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주정부가 법을 위반하거나 시민 권리를 보호하지 못할 때 연방정부가 개입했다는 점이다. 반면 2025년은 정반대다. 주정부는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연방정부가 강제로 개입하려 한 것이다.

미국 헌정체제의 미래는?

이번 위기는 여러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첫째,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신뢰가 무너졌다. 한 주의 방위군을 다른 주에 강제로 보내는 일이 벌어지면서, 주들 간 협력 체계가 흔들렸다. 이는 자연재해나 전염병 같은 국가적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법원의 권위가 도전받았다. 행정부가 법원 명령을 노골적으로 우회하려 했다. 만약 대통령이 대법원 명령까지 거부한다면, 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셋째, 군의 정치화 위험이 커졌다. 군이 특정 정파의 도구로 쓰이기 시작하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군 내부 단결도 깨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주정부와 법원이 견제할 수 있는가? 군은 국민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대통령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가?

앞으로 항소법원과 대법원이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도 있고, 의회가 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위기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다. 미국 헌정체제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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