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알자지라 보도 영상 캡춰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투쟁이 국제 평화 의제의 중심에 섰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세)를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위원회는 마차도를 "점증하는 암흑 속에서 민주주의의 불꽃을 지키는 용감하고 헌신적인 평화의 투사"라고 평가하며, 그녀의 비폭력 민주화 투쟁을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타난 '가장 비범한 민간인 용기 사례' 중 하나로 들었다.
이번 수상은 단순한 개인적 영광을 넘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와 인도적 재앙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평화'의 핵심 문제로 공식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대선에서 야권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이를 불법적으로 부정하고 맹렬한 정치적 탄압을 감행한 상황에서, 이번 수상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적 열망에 대한 국제적 공인이라 할 수 있다.
20년 차비즈모와의 대결, 야권 통합 이끌어
마차도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베네수엘라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차비즈모(Chavismo) 체제와의 대결 구도를 확립했다. 2012년 당시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어려움을 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했을 때, 차베스는 "독수리는 파리를 사냥하지 않는다"며 그녀를 비난하기도 했다.
벤테 베네수엘라(Vente Venezuela) 야당을 이끌고 있는 마차도는 2017년 국내 친민주주의 세력을 아우르는 '소이 베네수엘라(Soy Venezuela)' 동맹 창립을 도우며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녀는 지난 20여 년간 제한된 정부 권력, 법치주의, 시민의 자유, 시장 경제에 기반을 둔 고전적 자유주의 노선을 일관되게 표방하며 높은 신뢰도를 쌓아왔다.
마차도의 가장 큰 정치적 성과는 비효율적이었던 야권 세력들을 하나의 정치적 목표 아래 통합시킨 능력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그녀는 야권을 단일 대오인 통합 플랫폼(Unitary Platform)으로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통일된 리더십 덕분에 야권은 자유롭고 대의적인 정부를 요구하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출마 자격 박탈에도 70% 득표 승리...그러나 탄압 심화
마차도는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정권이 장악한 사법부가 2015년 자산 신고 시 식비 보조금 누락이라는 사소한 의혹을 이유로 그녀의 출마 자격을 불법적으로 박탈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은 오히려 마차도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격 박탈 후 마차도는 전 외교관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를 대리 후보로 지지했다. 그녀는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베네수엘라 전역을 순회하며 대규모 집회를 조직했고, 차비즈모 정권의 가장 효과적이고 영향력 있는 적수로 자리매김했다. 선거 감시 노력을 통해 그녀의 정당은 약 70%의 득표로 승리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 민주적 성공은 베네수엘라 내부의 인권 상황을 일시적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마두로 정권은 야권의 승리를 인정하는 대신 곤살레스를 망명시키고 마차도를 은신 상태로 몰아넣는 '맹렬한 정치적 탄압'을 개시했다. 마차도는 현재까지도 은신처에 머무르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투표용지가 총알보다 우월"...노벨 유언 세 기준 모두 충족
노벨위원회는 마차도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명시된 평화상 수상 기준 세 가지를 모두 충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첫째, 분열되었던 광범위한 야권 세력을 통합하고 단일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민족 간의 우애를 증진했다. 둘째, 베네수엘라 사회의 군사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상비군 감축에 기여했다. 셋째, 평화적 민주주의 전환을 변함없이 지지하며 평화 회의 촉진에 힘썼다.
위원회는 마차도의 수상 결정을 "투표용지가 총알보다 우월하다(a choice of ballots over bullets)"는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마두로 정권의 폭력과 탄압 속에서도 마차도와 지지자들이 비폭력적, 민주적 대응을 고수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마차도 진영은 정부의 억압 시도에도 불구하고 시민 주도의 노력을 감독하며 투표소를 감시하고 선거 결과를 기록하여 부정 행위를 폭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활동은 민주주의의 도구가 곧 평화의 도구임을 국제적으로 입증하는 근거가 되었다.
노벨상 수상은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운동을 단순히 국내 정치적 변화 요구 수준을 넘어, 국제적 규범과 질서를 파괴하는 '폭압적 권위주의 국가'를 해체하고 시민의 근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미래를 위한 '평화 구축(Peace-Building)' 과정으로 공식 인정했다는 제도적 의미를 지닌다.
UN "반인도적 범죄 지속"...국가 테러리즘 수준 탄압
지난해 대선 결과 불복 이후 베네수엘라의 인권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베네수엘라 사실조사단(FFM)은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베네수엘라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박해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 of persecution on political grounds)'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선거 이후 탄압이 심화되어 정부는 '국가 테러리즘'의 문턱에 도달하는 탄압 장치를 공고화하고 있다. FFM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정치적 반대자로 인식되는 인물들에 대한 임의 구금이 최소 126건 이상 보고되는 등 체포 건수가 급증했음을 문서화했다. 마차도의 가까운 협력자들 역시 체포되거나 고문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또한 최소 150명의 외국인이 정부 전복 음모 혐의로 구금되었으며, 이들은 가족이나 본국 당국과의 연락이 단절된 '엄격한 연락 두절 체제' 하에 놓여 있어 국제법 위반이 우려된다.
FFM은 지난해 7월 아라과 주에서 발생한 선거 후 시위 진압 과정에서 군 시설 내부에서 발사된 총격으로 7명이 사망한 사건을 집중 조사했다. 조사단은 이 사건에 관련된 4명의 장군과 2명의 선임 장교를 특정하며, 정권의 폭력 행사에 대한 개별 책임자들을 국제적으로 추적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780만 난민 유출...인도적 재앙 지속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인도적 재앙으로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014년 이후 780만 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조국을 떠나 이주 및 난민이 되었다. 이 중 약 670만 명이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콜롬비아가 280만 명으로 가장 많은 베네수엘라 이주민을 수용하고 있다. 국내에 잔류하고 있는 인구 중에서도 760만 명은 지난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했다.
트럼프 "자유 투사" 칭송...미국·EU·UN 강력 지지
마차도의 수상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책에 대한 강경한 태도와 맞물려 지정학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차도를 '자유 투사(freedom fighter)'라고 칭하며 지지를 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를 마약 테러리즘 혐의로 기소하고 체포에 5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으며,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연안에 대규모 해군 병력을 증강 배치하는 등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마차도는 수상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그에게 상을 헌정하며,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자유와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 동맹'으로 언급했다.
유럽연합(EU)과 유엔(UN)도 마차도의 수상을 환영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자유의 정신은 감금될 수 없다"고 언급하며 마차도를 축하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역시 마차도를 축하하며 그녀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투사이자 통합의 목소리"였다고 평가했다. UN 인권사무소(OHCHR)는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적 압박 강화 전망...평화적 전환 과제 남아
노벨평화상 수상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증폭시키고 민주적 거버넌스, 시민적 자유, 법치에 대한 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일부 분석가들은 마두로 정권이 여전히 베네수엘라 군부와 중국, 러시아 등 핵심 국제 후원자들의 지지를 유지하는 한, 노벨상 수상이 즉각적인 정권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신중하게 평가한다.
국제사회는 이 수상을 계기로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한 다층적 접근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첫째, 유엔 사실조사단을 통한 법적 책임 추궁 노력을 집중하여 마두로 정권의 탄압 행위가 '반인도적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핵심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780만 명 이상의 난민과 국내 760만 명의 인도적 지원 필요 인구를 고려하여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외교적 노력은 마차도가 헌신해 온 '평화적 전환'의 원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하며, 국제적 관심도를 이용해 마두로 정권에게 대화와 인권 준수를 요구하는 통합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재 마차도는 여전히 은신 중이며 정권의 탄압은 지속되고 있다. 노벨상은 야권에게 국제적 주목도를 이용해 국내외 압력을 조율하고, 평화적 전환을 위한 명확한 다음 단계를 설계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겨준다. 궁극적으로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의 근본적인 길은 '민주주의 도구'의 힘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폭압 정권에 맞선 국제적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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