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이민세관단속국(ICE) 전격 체포됐다 풀려난 고연수씨/AP연합 보도영상 캡춰


미국 퍼듀대학교에 재학 중인 20세 한인 학생 고연수 씨가 이민법원 출석 후 기습 체포되어 루이지애나주까지 이송되었다가 나흘 만에 극적으로 석방되는 사건이 발생해 한미 양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의 21일(현지시간) 보도로 알려진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과 시민사회의 저항, 그리고 정치적 개입이 복잡하게 얽힌 외교적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법정 출석이 덫이 된 순간

고연수 씨는 지난 7월 31일 자신의 비자 상태에 관한 정기 심리를 위해 뉴욕 맨해튼 연방 플라자 이민법원에 출석했다. 법정에서 판사는 그녀의 다음 심리 기일을 10월로 연기하는 통상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법적 의무를 다하고 법원 건물을 나서는 순간, 사복 차림의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를 기습적으로 체포했다. 지지자들에 따르면 당시 요원들은 체포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 씨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최초의 여성 사제로 서품받은 김기리 신부의 딸로, 2021년 3월 어머니를 따라 종교 활동 종사자 동반 가족에게 발급되는 합법적인 R-2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 이후 뉴욕주 스카스데일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퍼듀대학교 약학대학에 진학해 학업에 정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체포 후 고 씨는 맨해튼 26 연방 플라자 내 ICE 시설에 일시 구금되었다가, 곧바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루이지애나주 리치우드 교정센터로 이송되었다. 이 시설은 과거 인권 침해 및 기준 미달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곳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녀의 가족이 이송 사실을 당국으로부터 직접 통보받은 것이 아니라, 온라인 기록을 통해 간신히 파악했다는 점이다.

비자 해석을 둘러싼 치열한 법적 공방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고연수 씨의 비자 신분을 둘러싼 미국 정부와 변호인 측의 극단적인 법리 해석 대립이 있었다.

미 국토안보부(DHS)는 트리샤 맥러플린 공보담당 차관보를 통해 고 씨를 "2년 이상 전에 만료된 비자로 체류 기간을 넘긴 한국 출신의 불법 외국인"으로 규정했다. DHS는 주 비자 소지자인 어머니 김기리 신부가 소속 교구를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의 R-1 비자 청원이 무효화되었고, 따라서 이에 종속된 고 씨의 동반 가족 비자(R-2) 역시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 씨의 법률 대리인인 뉴욕 성공회 교구의 메리 로스웰 데이비스 변호사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데이비스 변호사는 "나는 그녀의 이름이 적힌, 2025년 12월까지 만료되지 않는 비자를 직접 확인했다"고 단언했다. 변호인단은 고 씨의 비자 신분이 2023년에 합법적으로 연장 승인을 받았으며, 고 씨가 학생 비자(F-1)로의 신분 변경을 신청하는 등 합법적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법적 절차를 성실히 이행해왔다고 강조했다.

현지 시위 모습/AP연합 보도영상 캡춰


시민사회의 강력한 연대와 압력

고연수 씨의 부당한 체포에 맞서 미국 시민사회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강력하게 결집했다. 종교 지도자들과 인권 단체, 그리고 한인 사회가 연대한 이 움직임은 단순한 동정의 표현을 넘어 정치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다.

뉴욕 성공회 교구의 매튜 헤이드 주교와 메리 로스웰 데이비스 변호사 등 교구 지도자들은 즉각 법률 지원팀을 꾸리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부당성을 알렸다. 이들은 고 씨의 구금을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며 대중의 양심에 호소했다.

맨해튼 26 연방 플라자 앞에서는 연일 기도회와 항의 집회가 열렸다. 대한성공회 역시 고 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연대를 형성했다. 뉴욕이민연대, 뉴욕종교간센터 같은 주류 인권 단체들도 즉각 연대에 나서며 이번 체포를 트럼프 행정부의 "잔혹하고 혼란스러운" 이민 정책의 필연적 결과라고 비판했다.

한인 사회 역시 깊은 충격과 불안감 속에서 결집했다. 뉴욕한인회 등 주요 단체들은 이를 "명백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 사건은 합법적인 서류를 갖추고 법적 절차를 따르려는 이들조차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한인 사회 전반에 각인시켰다.

공화당 의원의 '조용한 개입'과 정치적 역설

고연수 씨가 나흘 만에 극적으로 석방된 배경에는 시민사회의 거센 압력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저널이 특종 보도한 한 공화당 하원의원의 '조용한 개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 씨의 석방이 뉴욕을 지역구로 둔 공화당 소속 롤러 하원의원의 "조용한 개입(quiet intervention)"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처한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들은 공개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 기조를 지지하면서도, 바로 그 정책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일으키는 구체적인 문제에는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해결사 역할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화당 의원들의 이중적 행보에 대해 민주당 측은 날 선 비판을 제기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행동을 "자기가 일으킨 불을 껐다고 주장하는 방화범의 행동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즉,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고 방조한 정책이 초래한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한 채,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의 이미지만을 취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한국 정부의 영사 조력과 한계

사건 발생 직후 고 씨의 가족은 한국 정부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최대한 빨리 딸이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외교부는 사건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외교 채널이 가동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이 사건 해결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국 정부가 고 씨를 '불법 외국인'으로 규정한 국내 이민법 집행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외국 정부의 외교적 개입은 구금된 자국민에 대한 적법 절차 보장과 인도적 처우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극적 석방과 남은 과제

8월 4일 저녁, 고연수 씨는 거센 여론과 정치적 압력 속에서 뉴욕으로 다시 이송되어 보석 없이 석방되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4일간의 구금 생활을 마치고 어머니와 재회한 그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고 씨의 석방이 시스템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자신의 체류 신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미관계에 던진 시사점

이번 사건은 한인 이민 사회에 깊은 불안감을 남겼다. 합법적인 서류를 갖추고 법을 준수하려는 노력만으로는 행정부의 공격적인 단속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은 중대한 영사적 도전 과제를 부각시킨다. 동맹국의 국내 정책이 예측 불가능하고 심각한 위험을 자국민에게 초래할 때,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미국과 동맹국 및 그 국민들이 직면한 법적 불안정성과 정치적 역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고연수 씨의 체포와 석방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법의 자의적 해석, 시민사회의 저항, 정치적 이해타산, 그리고 외교의 한계가 복잡하게 얽힌 하나의 축소판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가 밝혀낸 가장 핵심적인 역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위기를 스스로 만들고 또 스스로 해결하는 정치 시스템의 이중성이다. 고연수 씨 사건은 이러한 시스템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강요하는지, 그리고 그 부조리한 시스템을 헤쳐나가기 위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냉엄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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