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과 청동기 고조선 전시물/AI 편집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 전시를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일제 식민사학의 청산과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근본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박물관 전시가 식민지 시대에 구축된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식민사학의 유산, 여전히 남아
논란의 핵심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구축한 역사 프레임워크가 해방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국 주류 사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일본의 한반도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했다. 특히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신화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고조선의 영토를 만주 일대를 아우르는 대륙 세력에서 한반도 북부의 작은 부족 집단으로 축소했다. 또한 '낙랑군 평양설'을 통해 한국 문명의 시작을 중국의 식민 지배와 연결시켰다.
비판자들은 약 20만 권의 한국 역사서가 소각되었다고 주장하며, 35권으로 구성된 『조선사』가 새로운 '권위 있는' 사료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한다.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오다 쇼고(小田省後) 같은 일본 학자들은 전통적인 건국 연대인 기원전 2333년을 고려시대의 조작으로 치부했다.
이병도와 강단사학의 형성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식민사관이 청산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 식민사학의 거두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밑에서 수학한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이병도는 신석호와 함께 서울대학교 사학과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남한 학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의 제자들은 이른바 '서울대 카르텔'을 형성, 대학과 한국고대사학회 같은 학회, 국립중앙박물관과 동북아역사재단 등 정부 기관의 요직을 장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재야사학 측은 이들 강단사학이 단군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낙랑군 평양설'을 고수하는 등 식민사학의 핵심 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도적 권력을 이용해 대안적 이론을 억압하고, 정설에 도전하는 학자들을 '사이비역사학자'로 낙인찍는다고 비난한다.
박물관 전시 논란의 실체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의 고조선 전시는 이러한 갈등의 최전선이다. 전시에는 단군이나 건국 연대(기원전 2333년)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고조선의 강역을 보여주는 지도도 부재하다.
고조선은 청동기실과 분리되어 부여, 삼한 등 후대 국가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는 고조선을 요령식 동검 문화와 같은 핵심 문화적 지표와 단절시키고, 최초의 국가가 아닌 여러 '부족' 집단 중 하나로 격하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한나라의 행정 구역인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했다고 명시한 전시 설명문이다. 비판자들은 이를 한국 국가사의 시작을 외세 식민지 시대로 규정하는 식민사학의 핵심 명제를 박물관이 공식 승인한 것으로 본다.
재야사학의 대항 서사
재야사학 운동은 윤내현, 이덕일 같은 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고조선이 만주와 중국 북부 일부를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이었으며, 한사군 특히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중국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재야사학은 신채호, 박은식 같은 항일 역사가들의 민족사관에서 영감을 받는다. 이들은 한국의 주체성과 상무 정신, 민족의 요람으로서의 광대한 북방 영토를 중심으로 한 역사를 주창했다.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한나라 양식 무덤과 '낙랑태수' 인장 등에 대해, 재야사학 측은 이것들이 교역품이나 전쟁 노획물, 또는 한사군과는 별개의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낙랑국'의 유물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일부는 점제현 신사비 같은 핵심 유물이 식민지 시기 조작품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중국 동북공정과의 연관성
이 내부 갈등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독립적인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의 지방 정권으로 재규정하려는 중국의 국가 프로젝트다.
비판가들은 남한 강단사학이 '낙랑군 평양설'을 방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국의 지정학적 프로젝트에 이념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한사군 위치와 관련해 동북공정 지도와 유사한 결과물을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강단사학과 재야사학 간의 깊은 균열은 한국이 중국의 역사 주장에 통일된 대응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정부가 동북공정에 맞서려 해도, 한사군에 대한 중국 입장이 한국 주류 학계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
수년간 시민단체와 정치인, 재야사학자들의 지속적인 비판에도 박물관 전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는 박물관 기획을 통제하는 강단사학 기득권층의 뿌리 깊은 제도적 권력과 이념적 경직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 논쟁은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니라 인식론적, 제도적, 심리적, 지정학적 차원이 얽힌 복합적 투쟁이다. 무엇이 역사적 '증거'를 구성하는지, 역사 지식 생산 기관을 누가 통제할 것인지, 어떻게 완전한 탈식민화를 이룰 것인지, 주변국의 역사 수정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모두 걸려 있다.
고조선에 대한 근본 질문들이 논쟁으로 남아있는 한, 식민지 과거의 유령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 기관을 계속 배회할 것이다. 이는 현대 한국에게 역사가 과거의 종결된 사안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치열한 전쟁터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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