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10일(현지시간) 새벽, 204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 대비 90% 감축하는 목표에 최종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EU 입법 기관들과 회원국 대표들이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이어진 격렬한 협상 끝에 도출됐으며, 2050년 기후 중립(Net Zero) 달성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중간 목표로 자리매김했다.

합의안의 핵심은 90% 감축 목표 중 최대 5%포인트를 파리협정 제6조에 따른 해외 탄소 배출권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EU 내부에서 85%만 감축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구매한 배출권으로 메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조항은 2036년부터 적용되며, 당초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제안했던 3% 한도보다 확대된 것이다.

또한 건물과 도로 수송 부문에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제2차 배출권 거래제(ETS2) 시행 시기가 2027년에서 2028년으로 1년 연기됐다. 이는 최근 유럽 내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고려한 조치로, 특히 동유럽 국가들과 이탈리아가 강력히 요구한 사항이다.

협상 과정에서 EU 회원국들은 뚜렷한 입장차를 보였다.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등은 엄격한 90% 국내 감축을 주장하며 국제 크레딧 허용이 유럽의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은 급격한 전환이 자국 산업 기반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맞섰다.

이탈리아의 질베르토 피케토 프라틴(Gilberto Pichetto Fratin) 환경장관은 최종 합의안의 유연성 조항을 "이탈리아의 요구가 반영된 승리"라고 평가했다. 폴란드는 석탄 의존도가 높은 자국 상황을 들어 ETS2 연기와 국제 크레딧 확대를 끝까지 요구했다.

이번 합의는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직후에 이뤄졌다. COP30에서 EU는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위한 글로벌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 블록의 반대 속에서 고립을 경험했다.

환경 단체들은 5% 해외 배출권 조항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1990년 EU의 순배출량 약 46억 톤의 5%는 약 2억 3천 2백만 톤에 달하는데, 이는 벨기에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의 연간 배출량을 상회하는 규모다. 환경 단체들은 이 조항이 2040년에도 화석연료 사용을 연장할 수 있게 해주는 '숨구멍'이라고 비판했다.

중요한 점은 허용된 5%가 회원국 정부의 감축 목표 달성용이지, 기업들이 참여하는 EU 배출권 거래제(ETS)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회원국 정부는 해외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지만, EU 내 기업들은 여전히 EU 내부의 배출권을 사용해야 한다.

합의문은 "고품질(high-quality)"의 파리 협정 제6조 크레딧만을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EU는 크레딧의 품질, 출처, 시기 등을 검증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은 EU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철강, 자동차, 배터리 등 탄소 집약적 품목의 주요 수출국으로, 이번 합의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특히 EU가 회원국 정부에는 해외 크레딧 사용을 허용하면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대상인 수입 기업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90% 감축 목표는 유럽 내에서 석탄 기반 제철의 완전한 퇴출을 의미하며, EU는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 기술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보조금 혜택 없이 높은 CBAM 관세를 부담해야 할 위험이 커졌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기후 목표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U의 90% 목표 설정은 한국 정부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할 때 강력한 상향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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