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소속 F/A-18F 슈퍼 호넷(Super Hornet) 전투기 2대가 9일(현지시각) 베네수엘라만(Gulf of Venezuela) 상공에 진입해 약 30~40분간 선회 비행을 실시하면서 카리브해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민간 항공 추적 플랫폼 플라이트레이더24(FlightRadar24)에 포착된 호출부호 '라이노11(RHINO11)'과 '라이노12(RHINO12)' 전투기는 미 해군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CVN-78)에서 발진해 마라카이보(Maracaibo) 북동쪽 해상을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비행이 "국제 공역(international airspace)에서의 일상적인 훈련 비행(routine training flight)"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 훈련보다 훨씬 더 베네수엘라 영토에 근접했다"고 인정하면서 사실상 전례 없는 압박 수위임을 시사했다. 베네수엘라는 역사적으로 이 만 전체를 자국의 내수(internal waters)로 간주해왔으나, 미국은 이를 국제 공역으로 보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남부의 창' 작전의 일환…RC-135 정찰기 동반 작전
이번 사건은 2025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미군의 대규모 작전 '남부의 창(Operation Southern Spear)'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 남부사령부(SOUTHCOM)가 주도하는 이 작전은 표면적으로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의 마약 밀매 차단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9월 이후 최소 22차례의 물리적 타격(Kinetic Strikes)으로 마약 밀매 의심 선박 23척을 파괴하고 최소 8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면서 실질적인 무력 작전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이번 작전에는 RC-135V 리벳 조인트(Rivet Joint) 전자정찰기가 전투기들과 연계해 작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를 "베네수엘라의 센서와 대응을 테스트하기 위한 압박 캠페인의 일부"라고 시인했다. 이는 전투기가 베네수엘라 영공 인근을 위협 비행할 때 베네수엘라군이 가동하는 S-300VM 등 방공 레이더의 전자적 특성과 반응 속도를 수집하기 위한 전술로 분석된다.
◆ 트럼프 "영공 전면 폐쇄" 선언 후속 조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베네수엘라 상공 및 주변 영공 전체를 폐쇄된 것으로 간주하라(closed in its entirety)"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F/A-18 비행은 이 선언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후속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정권을 단순한 독재 국가가 아닌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초국가적 범죄 조직으로 규정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IRGC) 및 헤즈볼라의 남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4일 베네수엘라 군부 내 카르텔로 알려진 '태양의 카르텔(Cartel de los Soles)'을 외국테러조직(FTO)으로 공식 지정했다.
◆ 베네수엘라 "실존적 위협" 강력 반발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즈(Vladimir Padrino López)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미군 전투기의 비행을 "반복적인 도발(reiterated provocations)"로 강력히 비난하며, 통합방공우주방위사령부(CEO-FANB)가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일련의 조치를 "식민지적 위협(colonialist threat)"이자 정권 교체를 위한 불법 침략 행위로 규정했다.
베네수엘라만은 삼면이 베네수엘라 영토로 둘러싸여 있어 전략적 민감도가 극히 높은 지역이다. 이곳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핵심인 마라카이보 호수로 진입하는 관문이며, 주요 정유 시설이 밀집해 있는 파라구아나(Paraguaná) 반도와 인접해 있다. 파드리노 장관은 "미국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영토 침범 시에는 즉각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 미 의회 내 반발…"의회 승인 없는 전쟁"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작전에 대해 미 의회 내에서는 우려와 반발이 교차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크리스 머피(Chris Murphy) 상원의원은 현재의 군사 작전이 "터무니없이 불법적(wildly illegal)"이며 "의회의 승인 없이 전쟁을 시작하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짐 하임스(Jim Himes) 하원의원 등 민주당 지도부는 국방부가 전쟁범죄 가능성이 있는 공습 영상을 은폐하고 있다며 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9월 2일 첫 공습 당시 1차 타격 후 생존하여 선체 파편에 매달려 있던 생존자들을 미군 특수전 부대가 확인 사살(Double-tap strike)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제법 위반 및 전쟁범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백악관 카롤린 레빗(Karoline Leavitt) 대변인은 이러한 타격이 "프랭크 M. 브래들리(Frank M. Bradley) 특수전사령관의 권한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옹호했다.
◆ 지역 확전 우려…브라질 "베트남전 스타일 분쟁 가능성"
라틴 아메리카 주변국들은 사태의 확전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브라질 룰라 다 실바(Lula da Silva) 대통령의 외교 특보인 셀소 아모림(Celso Amorim)은 트럼프의 영공 폐쇄 선언을 "전쟁 행위(act of war)"라고 비판하며, 미국의 침공이 남미 전체를 "베트남전 스타일의 분쟁(Vietnam-style conflict)"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외교부 린 지안(Lin Jian) 대변인은 미국의 제재와 영공 폐쇄 선언이 "유엔 헌장과 국제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구실로도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무부 마리아 자하로바 대변인도 "베네수엘라의 주권 수호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원유 보유국으로, 군사적 긴장은 국제 유가에 즉각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을 부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의 해상 봉쇄나 베네수엘라 내 석유 시설 타격으로 생산이 중단될 경우 디젤 및 항공유 등 중간 유분 제품의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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