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8일 결의안 279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약 반세기 동안 레바논 남부 안보를 담당해온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 임무를 2026년 12월 31일부로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파병된 우리나라 동명부대도 철수 수순에 들어갈 예정이다.
결의안은 UNIFIL 임무를 "최종적으로" 2026년 12월 31일까지 연장한 후 이후 1년 이내에 약 10,800명의 군·민간 인력과 모든 장비의 "질서 있고 안전한 감축 및 철수"를 시작하도록 규정했다. 궁극적 목표는 레바논 정부를 남부 레바논의 "유일한 안보 제공자"로 만드는 데 있다.
외교적 격전 끝 만장일치 도출
만장일치라는 표결 결과 이면에는 치열한 외교적 협상이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임무 종료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레바논 관련 결의안 초안을 작성해온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함께 급진적인 철수가 헤즈볼라가 악용할 수 있는 위험한 권력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직면한 프랑스는 결국 최종 임무 기간을 16개월로 설정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중국은 "한 상임이사국의 완고한 주장이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완전히 무시했다"며 미국을 간접 비판했다.
각국 엇갈린 반응
이스라엘은 이번 결정을 "역사적인 날"로 규정하며 환영했다. 이스라엘은 UNIFIL이 헤즈볼라의 막대한 무기 축적을 막고 지역 내 지배적인 군사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도로시 셰이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대행은 이번이 미국이 UNIFIL 연장을 지지하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못 박으며, 안보 환경이 변화했고 이제는 레바논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레바논의 나와프 살람 총리는 2026년까지 임무가 연장된 것을 환영하며, 레바논의 우려를 이해해 준 우방국들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이전 레바논 정부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과도하게 확장된" 레바논군이 아직 독자적으로 전 지역을 순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UNIFIL 주둔 연장을 요청했었다.
영국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철수 결정이 "증거 기반 평가"에 근거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실망감을 표하며, "시기상조의 철수"는 헤즈볼라가 악용할 수 있는 안보 환경을 조성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UNIFIL 47년 역사의 명암
UNIFIL은 1978년 3월 19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425호와 426호에 의해 창설됐다. 이스라엘의 리타니 작전 직후 이스라엘군 철수 확인, 국제 평화와 안보 복원, 레바논 정부 권위 회복 지원이 초기 임무였다.
그러나 198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레바논 침공 당시 UNIFIL 주둔지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무시되거나 유린당했다. 1996년 카나 포격 사건에서는 이스라엘 포병대가 약 800명의 민간인이 피신해 있던 UNIFIL 기지를 포격해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이후 안보리 결의안 1701호로 UNIFIL의 임무와 역량이 극적으로 강화됐다. 허가된 병력 규모가 기존 약 2,000명에서 최대 15,000명으로 대폭 증원됐고, 레바논군과의 파트너십이 임무 핵심으로 규정됐다.
2006년 이후 약 18년간 블루 라인을 따라 대규모 전쟁 재발을 막고 취약한 안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UNIFIL이 주관하는 3자 회의는 레바논과 이스라엘 군 관계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채널 역할을 했다.
그러나 UNIFIL은 결의안 1701호의 핵심 조항인 비무장화 임무 이행에는 명백히 실패했다. 헤즈볼라는 리타니 강 이남에서 비무장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군사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강시켜 약 15만 기 이상의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명부대의 모범적 활동
우리나라는 2007년 7월 '동쪽에서 온 밝은 빛'이라는 의미의 동명부대를 파병했다. 특수전사령부 장병을 주축으로 한 약 300-350명 규모의 동명부대는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에 주둔하며 UNIFIL 서부여단 예하 부대로 임무를 수행했다.
동명부대는 10만 회가 넘는 작전을 단 한 건의 주요 사고 없이 완벽하게 수행하며 작전 수행 능력의 탁월함을 입증했다. '피스 웨이브'로 명명된 민군작전을 통해 2025년 4월 기준 현지 주민 13만 명 이상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했다.
UNIFIL 내에서 유일하게 이동식 치과 버스를 운용하며 충치 치료, 스케일링 등 필수 진료를 제공했고, 화상 환자가 많은 현지 특성을 고려한 성형외과 진료,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한 수의과 진료 등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도로 포장, 학교 등 공공시설 보수, 태양열 가로등 설치 등 사회기반시설 구축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했다.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참사 당시에는 긴급 구호물품을 지원했다.
현지 주민들은 동명부대를 "신이 내린 선물", "친숙한 이웃"이라 불렀고, UNIFIL 지휘관들은 동명부대를 "최고의 PKO 부대", "가장 모범적인 부대"로 여러 차례 공식 치하했다.
철수 후 도전 과제
UNIFIL 철수 전략의 성패는 전적으로 레바논 정부군이 "유일한 안보 제공자"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군은 재정 위기, 자원 및 장비 부족, 종파적 분열 위험 등 여러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헤즈볼라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레바논 정부는 모든 무기를 국가 통제 하에 두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헤즈볼라는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겠다고 공언하며 정면 거부했다.
결의안 2790호는 "국제 사회가 레바논 정부군에 대한 장비, 물자, 재정 지원을 강화할 것"을 명시적으로 촉구한다. 전환기의 성공은 국제 사회의 지원이 얼마나 신속하고 규모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직접적으로 달려있다.
UNIFIL 철수는 레바논 국가의 통합성과 주권에 대한 고위험 도박과 같다. 이는 외부 세력이 관리하던 분쟁의 증상을 레바논 스스로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동명부대가 쌓아올린 막대한 외교적 자산과 긍정적 평판을 바탕으로 한국은 향후 레바논 재건과 평화 정착에 새로운 방식으로 기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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