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4일 조지아주 엘라벨. 평범했어야 할 목요일 오전은 장갑차와 헬리콥터의 굉음으로 깨졌다. 연방 요원들이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하며 한미 경제 동맹의 심장부에 차가운 칼날을 꽂았다. ‘오퍼레이션 로우 볼티지(Operation Low Voltage)’.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겨냥한 이 작전명은 향후 미국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 기업의 뇌리에 지정학적 리스크의 상징으로 깊이 각인될 것이다.

예고된 급습, ‘프로젝트 2025’의 첫 번째 희생양
이번 사태는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청사진인 ‘프로젝트 2025’는 이미 ‘전국적인 추방 기계’의 가동을 공언한 바 있다. 동맹국의 핵심 투자처를, 그것도 조지아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프로젝트 현장을 본보기로 삼은 것은 ‘미국 우선주의’의 깃발 아래 법 집행이 얼마든지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극우 정치 활동가의 제보 하나가 국토안보수사국(HSI) 역사상 단일 현장 최대 규모의 작전으로 비화한 과정은 충격적이다. 토리 브레이넘이라는 연방 하원의원 예비후보가 "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포퓰리즘적 명분을 내세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연방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다기관 공조라는 이례적인 규모로 화답했다. 이는 이제 한국 기업들이 마주해야 할 미국의 투자 환경이 단순한 법규 준수를 넘어, 풀뿌리 수준의 정치적 갈등과 포퓰리즘의 파도까지 고려해야 하는 험난한 바다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흔들리는 신뢰, 금이 간 파트너십
조지아주와 한국의 관계는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십의 전형이었다. 1985년 조지아주가 한국에 무역사무소를 열면서 시작된 인연은, 236억 달러가 넘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와 144개가 넘는 사업장으로 이어지며 조지아를 미국의 ‘배터리 벨트’ 핵심 허브로 만들었다. 현대차 메타플랜트만 해도 75억 9천만 달러의 투자와 8,500개의 직접 고용을 약속한, 그야말로 '조지아 경제의 미래'였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급습 한 번에 이 모든 신뢰의 역사는 흔들리고 있다. 주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연방 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자신의 최대 치적을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주 정부가 약속한 인센티브와 신속한 행정 지원이 연방 정부의 정치적 결정 하나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선례는 앞으로 조지아에 투자하려는 모든 외국 기업에게 심각한 경고등을 켠 셈이다.

‘몰랐다’는 항변, 통하지 않는 법의 잣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체포된 노동자들이 협력업체 소속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법적으로는 필요한 방어 논리지만, 현실의 법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미국 이민개혁 및 통제법(IRCA)은 원청기업이 하청업체의 불법 고용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constructive knowledge)’ 이익을 얻었다면 책임을 묻는다. ‘수개월에 걸친 형사 수사’였다는 HSI의 발표는 바로 이 ‘추정적 인지’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이 집중될 것임을 암시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기업의 오랜 관행과 미국의 경직된 비자 시스템의 충돌이다. 공장 설립 초기, 기술 전수를 위해 본사 인력을 B1/ESTA 비자로 단기 파견하는 것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장 노동을 엄격히 금지하는 미국 비자 규정의 ‘회색지대’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위험한 줄타기였다. 과거에는 묵인되었을지 모를 이 관행이 이제는 연방정부의 핵심 표적이 된 것이다.

새로운 현실, 새로운 생존법을 요구하다
조지아 사태는 한국 기업들에게 ‘대미 투자의 뉴노멀’을 제시한다. 이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기술력과 자본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현지의 정치 지형을 읽는 정밀한 분석, 최하위 협력업체까지 통제하는 완벽한 준법 감시 시스템, 그리고 연방과 주, 지역 사회를 아우르는 다층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새로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최고의 로펌을 선임해 법적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모든 협력업체에 E-Verify 사용을 의무화하고, 비자 편법 관행을 완전히 폐기하며, 현지 인력 양성에 투자해 본사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미 경제 동맹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그 토대가 흔들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지아의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역량을 내재화하고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법규 준수는 이제 비용이 아닌,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