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은 단순한 군사적, 이념적 대립을 넘어,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 구조와 미국의 상반된 경제 정책이 맞물려 형성된 대리전의 성격을 띤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전례 없는 후원과 이란에 대한 질식시키는 압박이라는 이중적 정책이 양국 간의 심각한 ‘경제적 비대칭성’을 형성하고 증폭시키고 있다.
제재 속 ‘저항 경제’ 이란 대 기술 기반 ‘스타트업 국가’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립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경제 모델의 충돌이다. 한쪽은 수십 년간 이어진 국제 제재로 고립되고 취약해진 ‘저항 경제’ 모델에 의존하는 에너지 강국이며, 다른 한쪽은 세계 경제와 긴밀히 통합된 기술 혁신 강국이다.
이란 경제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0%, 천연가스 매장량의 15%를 보유한 ‘에너지 초강대국’이지만, 이 막대한 자원은 국제 사회의 압박이 집중되는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이란 전체 수출 수익의 82%를 차지하며 국가 재정의 절대적인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의 제재는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통화 가치 하락, 높은 실업률을 야기하며 정권의 안정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이란의 2023년 GDP 성장률을 5.0%로 추산했지만, 2025년에는 미국의 제재 강화와 중국 수요 둔화로 인해 -1.6%의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더욱 비관적으로 2025년 성장률을 0.3%로 예측하며 사실상 성장 정체를 예견했다. 이러한 경제적 제약은 이란이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대리 세력을 활용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무기화하는 비대칭적 수단에 의존하도록 강제하는 배경이 된다.
반면, 이스라엘은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스타트업 국가’로서 역동적이고 다각화된 경제를 구축했다. 2022년 기준 5,250억 달러를 상회하는 명목 GDP는 이스라엘을 중동의 핵심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스라엘 경제 성공의 중심에는 GDP의 6.3%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와 군과 하이테크 산업 간의 강력한 공생 관계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엘리트 정보 부대인 ‘8200 부대’는 인재를 양성하는 ‘창업 사관학교’ 역할을 하며 기술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역사적으로 에너지 자원 부재가 가장 큰 전략적 취약점이었으나 , 2010년대 동지중해에서 타마르와 레비아탄 등 대규모 해상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그리스, 키프로스와 함께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는 ‘이스트메드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새로운 지정학적 지렛대를 확보하게 되었다.
미국의 이중 잣대: 이스라엘 후원과 이란 압박
미국은 이스라엘-이란 분쟁에서 분쟁의 경제적 지형을 설계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에는 막대한 지원을, 이란에는 가혹한 제재를 가하는 이중적 접근법은 분쟁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로, 2024년 기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누적 원조 총액은 약 3,100억 달러에 달한다. 현재는 2019년부터 2028년까지 10년간 총 380억 달러를 지원하는 양해각서(MOU)가 유효하며, 연간 33억 달러의 ‘대외군사자금(FMF)’과 5억 달러의 미사일 공동 방어 프로그램 지원금이 제공된다. 이 지원의 기저에는 이스라엘의 ‘질적 군사 우위(QME)’를 보장하려는 미국의 확고한 전략적 목표가 있다.
그러나 이 지원은 이스라엘을 미국의 무기 플랫폼에 종속시키고 전략적 자율성을 제약하는 ‘황금 새장’으로도 작용한다. FMF 자금 대부분은 반드시 미국 방산업체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며 , 특히 현재의 MOU는 과거 이스라엘 방위 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역외조달(OSP)’ 조항을 점진적으로 폐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OSP 폐지는 이스라엘 경제에 상당한 손실을 초래하고 방산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는 현대사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오래 지속된 경제 압박 작전 중 하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시작된 제재는 1차 제재(미국 기업 및 개인의 거래 금지)와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강력한 2차 제재로 구성된다. 전 세계 무역 결제의 약 90%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이는 사실상의 사형 선고와 같아, 이란 경제의 생명줄인 에너지 부문을 정조준하고 이란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차단하며 국제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이로 인해 2019년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원화결제 시스템 중단 이후 전년 대비 87.7%나 폭락하기도 했다.
경제적 전쟁터: 호르무즈 해협, 대리세력, 그리고 사이버 공간
양국의 분쟁은 세 개의 핵심 경제적 전쟁터에서 전개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대리 세력 네트워크, 그리고 디지털 공간이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그 자체로 강력한 경제 무기다. 2025년 6월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자 국제 유가는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면 봉쇄는 이란에도 경제적 자살행위이기에 가능성은 낮지만 , 기뢰 부설이나 유조선 나포 시도 같은 저강도 도발을 통해 해상 보험료를 급등시켜 세계 경제에 고통을 가하는 '다이얼'처럼 활용되고 있다.
이란은 제재로 약화된 재래식 군사력을 보완하기 위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이라 불리는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비용 효율적인 비대칭 수단으로 활용한다. 미 국무부와 재무부 추정에 따르면, 이란은 헤즈볼라에 연간 7억 달러 이상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에 연간 1억 달러 수준 , 후티 반군에는 수천만에서 최대 3억 달러 규모의 무기 및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이란 입장에서 엄청난 '전략적 투자수익률'을 보이는 전략이다.
물리적 충돌 이면에서는 상대의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치열한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연계 해킹 그룹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연관된 세파 은행의 데이터를 파괴하고 , 친이스라엘 성향의 해킹 조직 ‘프레데터리 스패로우’는 이란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약 1,200억 원 상당의 자산을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란 역시 국가 후원 해킹 그룹을 동원해 이스라엘의 공습 경보 시스템, 통신망 등 핵심 인프라를 공격하고 허위 문자 메시지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란 연계 해킹 그룹을 최소 9개 이상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략적 전망과 함의
분쟁의 향방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 정책, 이스라엘의 에너지 외교, 이란의 내부 안정성 등 몇 가지 핵심 변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교적 노력을 통한 긴장 완화 ▲현재와 같은 저강도 분쟁 지속 ▲전면적 확전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 분쟁은 중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전면전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글로벌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사이버 안보 강화, 공급망 다변화 등 정교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란_이스라엘_분쟁 #경제_비대칭성 #미국_대중동정책 #호르무즈_해협 #사이버_전쟁 #에너지_안보 #대리_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