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문신사법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며 1992년 이후 33년간 지속된 비의료인 문신 시술 금지가 해제됐다. 이로써 약 30만명의 종사자와 2조원 규모의 지하경제가 제도권으로 편입될 전망이다.
국회는 25일 본회의에서 재석 202명 중 찬성 195명으로 문신사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국가시험을 통한 면허제 도입, 위생 및 안전관리 의무화, 명확한 영업소 기준 설정을 골자로 한다.
33년 금지의 역사 마감
1992년 대법원은 91도3219 판결에서 문신 시술을 '의료 행위'로 규정하며 비의료인의 시술을 금지했다. 당시 재판부는 비위생적인 바늘 사용으로 인한 질병 전파 가능성과 피부 조직 침습에 따른 부작용 위험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적 금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신 산업은 음지에서 거대하게 성장했다. 현재 약 30만 명의 종사자와 2조원 규모의 시장, 그리고 문신 시술 경험 인구 1,300만 명으로 추산될 만큼 방대한 규모로 발전했다.
2022년 3월 헌법재판소는 5대 4라는 근소한 차이로 기존 의료법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이는 오히려 문신 금지에 대한 법적 정당성이 최고 사법기관 내에서도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전문직 '문신사' 탄생
문신사법은 '문신 행위'의 범위를 전통적인 예술 문신과 미용 목적의 반영구 화장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면허를 취득한 사람에게만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는 독점적 전문 지위를 부여한다.
문신사들은 매년 위생·안전 관련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며,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시술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는 철저한 소독·멸균 절차를 거쳐야 하며, 사용된 바늘 등 감염성 폐기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
또한 반드시 법에서 정한 시설 및 장비 기준을 충족하고 관할 시·군·구에 등록된 '문신업소'에서만 시술을 할 수 있으며,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용자의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다만 면허를 소지한 문신사라 할지라도 문신 '제거' 시술을 하는 것은 명백히 금지하며, 이는 의료 행위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는 미성년자에게 문신 시술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한다.
업계 환호와 의료계 반발
국회 본회의를 방청하던 문신사 관계자들은 법안 통과 순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문신사중앙회는 성명을 통해 "마침내 자랑스러운 전문 직업인으로 거듭나게 됐다"며, "떳떳한 직업적 자긍심으로 보다 안전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 K-타투를 세계 최고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법안이 통과된 9월 25일을 '문신사의 날'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의협은 성명을 통해 "문신사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더라도 위험하지 않은 행위가 되려면 의협이 교육·관리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문신이 피부를 침습하는 행위로서 감염, 알레르기 반응, 흉터 등 다양한 의학적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위험은 오직 전문 의료인만이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 입법부는 이번 입법이 '법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비규제 산업이 음지에서 무분별하게 운영되는 것이, 오히려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합법 산업보다 국민 건강에 더 큰 위협이 된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국제적 추세와 부합
한국의 문신 합법화는 국제적 흐름과도 일치한다. 일본은 2020년 최고재판소 판결을 통해 문신 시술을 '예술 행위'로 재규정하며 합법화했다. 미국은 주 단위로 분권화된 규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2022년부터 REACH 지침을 통해 문신용 잉크의 화학 물질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화학 물질 우선'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2년간 준비기간 거쳐 시행
법안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기관이 국가시험 제도, 면허 발급 절차, 세부 시행 규칙 등을 마련할 준비 기간을 고려해 법률 공포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 시행 이후 최대 2년의 경과 기간을 두어 기존에 활동하던 문신사들은 임시 등록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영업을 계속하면서 정식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적 파급 효과 기대
약 1,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문신 경험자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 보호 제도의 도입이다. 이전까지 소비자들은 시술 부작용이나 분쟁 발생 시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려웠지만, 새로운 법은 면허를 소지한 전문가, 등록된 영업소, 그리고 손해배상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통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체계를 마련했다.
세계 타투 시장이 2025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10.3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번 합법화는 'K-타투'가 이 성장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문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점진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과반수가 문신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규제된 합법화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향후 2년간 보건복지부는 공정하고 포괄적인 국가시험 설계, 영업소 등록 기준 설정, 상세한 단속 및 처벌 규정 마련 등 전체 규제 시스템을 처음부터 구축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특히 예술적·기술적 능력과 함께 위생, 해부학, 감염병 관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시험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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